문과대학 중어중문학과 박석홍 교수

중문과 박석홍 교수
1980년대 후반 중국 액션·느와르 영화의 대표적인 배우였던 주윤발(周潤發)은 흥행 보증수표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명성과 인기가 대단했다. 여학생들의 공책에는 어김없이 주윤발의 책받침이 꽂혀 있었고 그가 출연했던 우리나라의 한 음료수 CF는 지금도 화제가 되곤 한다.

이제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를 훌쩍 넘어버린 그가 최근에는 공자(孔子)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에서 공자 역을 맡게 되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성냥개비를 물고 무기를 든 모습에 익숙한 관객의 욕망에서는 그야말로 이미지의 대변신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그의 변신은 연기만이 아니다.  ‘저우룬파’로 ‘개명’하고 신문지상에 다시 나타난 것이다. 현행 중국어 고유명사의 우리말 표기법은 신해혁명(1911) 또는 5ㆍ4운동(1919) 이후의 현대 중국인들의 이름은 모두 중국어의 현실음을 반영한 원음주의에 따라 표기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최근에는 국제화란 미명하에 그 추세가 더욱 강화되고 있다.

한국의 중국인 개명운동

한국에서 벌어진 중국인에 대한 대규모 ‘개명운동’은 인명을 넘어 ‘쓰촨(四川)’·‘옌볜(延邊)’·‘스쟈좡(石家莊)’ 등과 같이 지역ㆍ도시명, ‘취안톈퉁(全天通)’ㆍ‘위안(元)화’ 등과 같은 기업이름ㆍ경제 용어 등 거의 모든 고유명사로 확대되었다.

원음주의를 고수하는 외래어 표기법이 영어나 프랑스어 등과 같이 우리말·글과 전혀 다른 언어에 있어서는 어쩔 수 없는 고육지책일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어 고유명사의 우리말 표기법만큼은 우리의 언어 및 문자 생활에 갖가지 불편과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각종 외래어가 남용되는 현실에서 우리말의 오염을 더욱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언어경제 고려 안 돼

중국어 고유명사의 우리말 표기법은 우리말 내의 언어경제(linguistic economy)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의 언어를 편하게 사용하려는 ‘노력의 경제’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중국어 고유의 발음을 그대로 옮기는 과정에서 ‘촨’ㆍ‘볜’ㆍ‘좡’ㆍ‘췐’ 등처럼 우리의 일상 언어에는 거의 혹은 아예 없는 자모의 조합 형식이 나타났다.

더욱이 우리말로 옮겼을 때 두배 넘게 늘어난 음절 수 등은 어려운 경제 상황 때문에 가뜩이나 고달픈 한국인들의 눈ㆍ귀ㆍ입을 더욱 피로케 하고 있다.

현재의 우리말 한자음은 대략적으로 중국의 당(唐)·송(宋) 시기의 발음인데, 우리의 음운 체계 내에 들어와 자연스럽게 변화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의 한자음도 우리말 내부에서 자연스럽게 사용되면서 앞으로 점차 변화될 것이고, 우리의 한자음 표기 역시 이에 근거하여 수정될 것이다.

중국어도 시간이 흐르면 점차적으로 음운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그때마다 중국어 발음에 근거하여 중국어 고유명사의 우리말 표기법을 매번 개정할 것인가? 그것은 우리말 표기법이 중국어의 음운 변화에 종속되는 언어사대주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중국어에 대한 새로운 표기체계의 확립이 필요하다고 할 수있다.

표기체계 확립 필요

한글은 외래어를 서사함에 있어서도 그 뛰어난 우수성이 입증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말 속에 이미 정착된 자연스러운 한자음을 버리고, 우리말 사용자들의 불편을 가중시키는 중국어의 현실 원음을 적는데 남용되는 것은 마땅히 재고되어야 한다.

따라서 모든 외국어를 원음으로 적어야 한다는 편의 위주의 획일적ㆍ일방적 어문정책을 버려야 한다. 자연스러운 우리의 한자음으로 중국어 고유명사를 적는 표기체계가 확립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말ㆍ글의 편리한 사용을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우리말ㆍ글을 보다 아름답게 하는 또 하나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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