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만능주의에 의존한 능동적 복지 오히려 빈곤층은 사각지대 방치돼

한국은 식민지 경험이 있는 제3세계 국가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근대화의 양대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산업화(경제성장)와 민주화(시민적 권리)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근대화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1950년대 미국의 원조액이 결정된 이후에야 정부예산을 수립할 수 있었던 무기력하고 의존적인 경제에서 경제규모 12위의 무역대국으로 발전하였고, 반공을 빌미로 무자비한 탄압을 자행하였던 폭압적인 군사정권을 시민의 힘으로 굴복시키고 직선제 개헌을 성취한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특히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정권이 집권하였던 지난 10년간은 경제발전과 민주화의 성과 위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선진복지국가로 나아가는 초석을 놓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MB 정부가 들어선지 고작 1년 만에, 지난 반세기에 걸쳐서 우리가 이룩한 경제발전, 민주주의 그리고 복지국가라는 성과가 총체적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집권 초반기 연이은 실정(失政)으로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면서, 연 7% 경제성장을 통해서 국민소득 4만 불을 달성하여 7대 경제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던 747 공약(公約)은 말 그대로 공약(空約)이 되고 말았다.

극심한 경제위기의 여파로 문을 닫는 기업들이 늘어가면서 실업자들이 양산되고 빈곤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고 있다. 고용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자영업자의 60% 이상이 적자에 허덕이며 폐업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지난 1년간 중산층은 붕괴되고 서민들의 생활고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젊은이들의 얼굴에는 미래에 대한 희망보다는 88만원 세대의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모순적인 시장주의적 복지

하지만 현 집권층은 이러한 서민 중산층의 경제적 고통에 대해서는 외면하면서,  오히려 ‘부자 퍼주기’로 일관하고 있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저소득 밀집지역 공부방에 대한 예산을 삭감하여 방과 후에 갈 데 없는 어린 학생들이 공부방에서 추위에 떨며 배고픔에 시달리게 하는 한편,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인 부자들을 위해서는 각종 부동산 감세정책과 부동산 투기조장 정책을 통해서 더욱 더 잘살게 해주고 있다.

고소영, 강부자 정부다운 면모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하기야 “땅을 너무 사랑해서” 탈법적인 부동산 투기를 하였다는 사람들에게 무슨 기대를 할 것인가?

MB 정부의 반복지적 행보는 영리의료법인 도입과 민간 의료보험 활성화 정책에서 절정에 이른다. 이러한 친시장적 정책은 공공성을 핵심으로 하는 의료서비스를 단지 돈벌이 상품으로 전락시키고, 더 나아가서는 건강보험제도의 기본 토대를 무너뜨리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게다가 전 국민의 노후를 안정적으로 보장할 목적을 가진 230조원의 국민연금 기금을 안정성 보다는 수익성 위주로 운영하는 사적인 펀드로 만들려는 개편안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미래의 아동들을 보호하고 육성하는 보육서비스도 양질의 보편적인 서비스 제공보다는 시장화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추진되고 있다. 이외에도 사례를 들자면 끝이 없을 정도이지만, 일정한 공통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돈이 된다면 무엇이라도 한다”는 천민자본주의의 천박성이다.

한편 정부와 여당은 지난 12일 ‘민생안정을 위한 일자리 대책’ 위주로 28.9조원 규모의 추경예산안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속빈 강정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추경 전체 예산 중에서 (부자들의 감세로 인한) 세수 결손보전 액수 11.2조원을 제외한다면, 추경 규모는 대폭 줄어들게 되고, 이나마 대부분이 6개월의 단기적 일자리 창출이나 한시적 소득보전에 그치고 있다.

따라서 정부의 일자리 대책은 현재 노동시장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근로자들에게 전혀 희망의 메시지가 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저임금, 비정규, 한시적 일자리만으로는 근로자 자신이 생활의 방도를 찾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생활을 계획할 수 없기 때문에, 정부의 추경예산안 발표 역시 공허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불안정 노동시장 빈곤층양산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를 위해서 먼저 한국 노동시장의 구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위의 <그림 1>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저소득층이 노동시장의 악순환 구조에 빠지게 되는 과정을 나타내고 있는데, 올 해에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오는 평범한 대한민국의 청년 한국이의 경우를 들어서 설명해보자.  

한국이가 사회의 첫 발을 내딛는 올해는 경제위기로 안정적이고 상대적으로 보수가 좋은 괜찮은 직장(descent job)의 수는 극소수에 불과한, 한 마디로 고용시장이 꽁꽁 얼어붙은 해이다.

이러한 최악의 고용상황에서 평범한 청년 한국이는 괜찮은 직장을 포기하고 중소규모의 회사에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취직하게 된다. 그 회사에서 성실하게 일하였으나, 3개월, 6개월 단위로 계약을 갱신하다가 연속고용금지를 명시한 비정규직 법으로 인해서 원하지 않게 퇴사를 하게 된다. 별다른 뾰족한 수가 없어진 한국이는 집안과 주위의 도움을 얻어서 소규모 자영업을 창업하게 되는데, 경제위기의 한파는 자영업자들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불어 닥치는 법이라 얼마 안가서 투자한 돈도 건지지 못하고 폐업을 하게 된다.

백수신세가 된 한국이는 고용안정센터에서 제시한 취업훈련을 받다가, 다시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취업을 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소위 ‘저임금 비정규직’ ↔ ‘저소득 자영업’ ↔ ‘실직’으로 이어지는 삼각형 악순환 구조에 본격적으로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노동시장의 악순환 구조에서 몇 회전 하다가, 중·고령이 되면 자연스럽게 실망실업자로 전락하게 된다. 한국이 본인이 무능하거나 나태하지 않았고, 어느 누구도 한국이에게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지만 노동시장의 구조가 그를 경제적 무능자로 전락시킨 것이다.

사회서비스부문 고용 필요성

이러한 현실에서 정부의 역할은 너무나 명백하다. 바로 이러한 노동시장의 악순환 구조를 끊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일자리인 사회적 서비스 일자리를 창출하여 지속적으로 제공하여야 한다.

일반적으로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일수록 전체 고용인구 중에서 사회서비스 종사자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특히 노르딕 국가인 노르웨이(34.2%), 덴마크(31,3%), 핀란드(27.3%) 등이 이에 해당한다. 반면, OECD 국가 중에서 저소득 국가인 포르투갈(17.9%), 한국(12.6%), 그리고 터키(12.1%)는 사회서비스 직종의 비중이 매우 낮은 편이다.

이중에서 특히 한국은 사회서비스 부문의 고용비중은 낮은 반면에, 도시 비공식 부문이라고 할 수 있는 자영업자 비중은 상대적으로 매우 높은 실정이다. 2003년 기준으로 비농업 부문 자영업자의 경우, 미국은 7.1%에 불과한 반면에 한국은 27%(2005년)에 달할 정도로 자영업자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매우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영업의 비중이 높다는 것은 전근대적 산업부문이 광범위하게 잔존하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현실적으로는 준비되지 않은 진출로 인하여 높은 퇴출율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전체 노동시장을 불안하게 만들 소지가 있다.

따라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한국의 고용구조를 볼 때, 사회서비스 부문의 부족인원을 채우고, 자영업 부문의 과잉인원을 감소시켜서 균형을 잡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즉 사회서비스 부문의 부족인원과 자영업 부문의 과잉인원을 서로 교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 사회는 후기 산업사회의 특징적인 현상인 소득 양극화를 핵심으로 하는 계급양극화와 더불어, 저출산 고령화 현상, 가족의 해체 현상 등으로 인하여 사회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특히 장기노인요양보험제도의 확산으로 인하여 돌봄노동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사회서비스 부문의 고용창출은 (1)사회복지 수요의 충족, (2)사회양극화 현상의 완화, 그리고 (3)일자리 창출이라는 세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이면서도 시급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약자 위한 복지정책 돼야

얼마 전에 승합차 모녀 이야기가 온ㆍ오프라인에서 화제가 되었다. 어머니가 병들어서 일할 수 없게 되고 월세집에서도 쫓겨날 위기에 처하자 어린 딸이 용기를 내어서 대통령에게 도와달라는 편지를 보냈는데, 이 편지를 읽은 대통령께서 은전을 내리셔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도 선정되었고 임대아파트에게 입주하게 되었다는 미담이다.

승합차 모녀에게는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고, 또 이러한 혜택을 받을 자격이 충분히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비슷한 처지에 있으면서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지 않았던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주는 일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제는 ‘나랏님의 은전’으로 어려운 사람이 구제되었다는 전근대적이고 봉건적인 행태는 제발 그만두자. 이들은 대통령께서 마음에 내키는 대로 은사를 베푸시는 시혜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 당당한 대한민국의 시민들이다. 이들에게 적합한 사회적 일자리를 만들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서 스스로 생활의 방도를 찾으면서 미래를 계획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정부의 기본 책무이자 우리 모두의 책임이기도 하다.

문진영                 서강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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