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현선 작가ㆍ조선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자

채현선(문화예술대학원 재학중) 작가
얼마 전에 이사를 했다. 갈수록 많아지는 책들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좀 더 넓은 서재가 필요했다. 그러고 나자 좀 더 넓은 주방과 거실이, 좀 더 큰 냉장고와 모니터가 필요해졌다.

이사를 하고 나서 내게 주어진 좀 더 넓은 공간을 바라보다가 정말 이것들이 내게 필요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 필연성의 끝에는 언제나 아빠가 서 계신다.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한다.’

생전의 아빠께서 내게 해주신 말씀 중의 하나이다. 나는 아직까지 이 말이 품은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아빠께서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으셨으니, 그저 짐작으로만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책꽂이에 꽂힌 책들을 정리하며 이런 책도 있었네, 라는 말을 수십 번 반복했다. 뭐야, 똑같은 책이 세 권이나 되잖아, 라는 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책을 많이 사는 편이다. 소설 쓰는 사람에겐 당연한 일이 아닐까. 중요한 건 책을 많이 산다는 것과,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그림= 정명근 객원기자
고백하자면 나는 늘 무리하게 책을 사고, 내 눈은 늘 무리한 목표를 향해 있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할 수 있다는 거짓말을 한다. 불가능한 일이란 걸 알면서도 눈을 딱 감고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다. 미처 읽지 못한 책은 자책과 죄책감의 결과물로 쌓인다. 나는 그 결과물 속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며 소설을 쓴다. 그럼에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으며 후회하지도 않는다.

아빠는 너희가 읽지 않으니 내가 읽어주겠다며 자식들 머리맡에서 책을 펼치곤 하셨다. 그러다 종종 수수께끼를 내셨다. 답은 하나일 수도 모두일 수도 있을 것 같은 문제들이었다. 아빠는 끝내 정답을 말해주시지 않았다.

내가 겪어야 할 모든 과정을 내다보셨는지 아이러니컬하게 이런 말씀도 하셨다.  ‘아님 말고.’

나는 이 말이 정말 마음에 든다.

이제 나는 아빠가 낸 수수께끼의 답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누구나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모퉁이를 돌게 될 것이다. 그 모퉁이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내가 선택한 것이 정말 정답인지는 알 수 없다.

설령 그것이 틀린 답이라도 상관없는 일이다. 모든 일의 결과가 좋을 순 없으니까. 예기치 못했던 일이 생기기도 하고. 다만 내가 선택한 답으로 더 나은 미래를 향해 가고 있다고 스스로를 믿는 것일 뿐이다. 그러다 보면 그게 정답이 되는 게 아닐까. 내가 소설가가 된 것처럼.

아님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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