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홍윤기 교수

홍윤기(철학)교수
여섯의‘죽음들’ 앞에서 ‘우리 생각 좀 하자’고 하는 것은 아무래도 뺨맞을 짓인 것 같다. “우리가 고통 받고, 내 남편이, 내 자식이 죽어갈 때, 너희는 어디서 뭘 하고 있었나!”라고 울부짖는 유족들 앞에서 몸 둘 바를 모르는 것은 단지 이 정권을 맡은 여당 정치인들만은 아닐 것이다.

서민들을 위한다면서도 지난 정권에서 개발의 욕망을 조정해내지 못하고 결국 대중의 과대 욕망을 부추긴 경제포퓰리스트 세력에 정권을 내준 지금의 제일 야당도 죽어간 이들이 평소 하던 얘기에 귀를 막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또 상당한 진정성을 갖고 서민들을 위해 분투했던 진보정당들의 노력도 헛된 죽음 앞에서 송구스럽기는 마찬가지였을 터이다.

그들은 왜 죽어야 했을까?

그러나 정말 피지 못한 청춘으로 죽어간 우리의 경찰특공대 청년이 다시는 생겨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용산에서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를 악물고 생각할 때이다. 또 자기에게 도움을 청한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외면하지 못해 망루 위에 올랐다가 더불어 분사한 전철연 활동가나 살려고 올라갔다가 죽어서 내려온 용산 철거민의 죽음이 또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해서도 그렇다.

MB 정권과 그에 동조하는 세력들은 2009년 1월 20일 용산에서 일어났던 사태를 이렇게 인지한다. 즉, 그것은 ‘더 많은 보상금’을 타낼 욕심에 사로잡힌 철거민들이 도심지 테러를 사주하는 전철연의 지도를 받아 농성장을 꾸리고 지나가는 행인들과 버스에 대한 폭력도 불사하면서 도시의 안전을 볼모삼아 떼를 쓰다 일어난 일종의 우발적 사고였다고.

여기에 검찰이 나서서, 농성 돌입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농성장에 인화물질이 있음을 충분히 알고도 테러진압용 경찰 특수부대를 투입한 것은 일종의 테러 진압 작전으로서 별 문제가 없고. 문제는 이런 ‘테러’ 내지 ‘폭력적 해결’을 사주한 전철연에 있다고, 사태를 ‘법적으로’ 정리하고 나섰다. 정권 측에 의해 제시된 이런 공지 사항부터 생각을 출발시켜 보자.

우선 가장 먼저 생각되어야 하는 것은, 정권측이 거의 테러범 내지 폭력인질범 으로 몰고 있고 망루에서 사망한 전철연 활동가들이나 용산 철거민들이 과연 현장에서 즉사시켜도 무방할 정도로 긴급한 행동을 감행하고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검찰, 경찰, 그리고 정권에 가장 호의적인 어떤 언론 보도를 샅샅이 훑어봐도 이들이 테러진압부대 작전 대상이 될 만한 그런 긴급한 액션을 취했다는 정황은 보고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한 국가의 운영을 맡고 있는 정권이나 아니면 경찰에게 자신들의 이익을 지켜달라고 청구할 수 없는 이 국가의 시민이 아니었던가? 분명한 것은 사망자 여섯 명 가운데 대한민국 경찰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비(非)국민은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럼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자. 이들을 아무리 테러범으로 몰고 싶어 하는 이들도 망루에서 분사한 다섯 명의 전철연 활동가나 용산 철거 당사자들이 철거로 인해 발생한 자기들의 ‘손해를 보상’받으려는 의도로 ‘극단적 행동’을 감행했다는 것은 인정할 것이다.

철거민, 정당한 보상 받았나

그런데 여기에서 시각이 갈린다. 망루 농성자들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세력은 이들이 ‘더 많은 보상금’을 타내기 위해 ‘떼'를 쓴 것이라고 몰아붙인다. 이것은 곧 이들이 이미 용산 개발지역 철거로 인해 발생한 손해에 대해 ‘충분히 또는 정당하게 보상받았다’고 암암리에 전제하고 있다. 이들이 내거는 근거는 개발지역 거주자들에 대한 보상은 전부 법적으로 인정가능한 입주 및 전월세 계약금이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2,500만원으로 가게를 얻어 영업하던 호프집 사장님에게는 2,500만원에 3개월 영업손실액에 해당되는 이사비용만 주면 되고, 800만원짜리 월세방에서 살던 사람은 800만원에 이사비를 조금 더 얹어주면 된다고 법을 해석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회적으로 온당한 삶을 꾸려온 시민이라면 단지 떼를 써서 더 많은 돈을 받기 위해 신나통을 짊어지고 망루 위에 올라가 목숨까지 걸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법적으로 명시된 임대료 말고도 시장에서 공공연히 거래되어와 그 댓가를 지불했던 권리금도 있고, 무엇보다 그 지역에서 향후 짧아도 3년 이상은 잘 살 수 있다고 내다보고 시작한 미래의 삶도 있었다.

시장에서 엄연히 거래되던 ‘권리금’ 1억을 묵살하고, ‘자기와 가족의 3년 삶’을 단 석달로 깔아뭉개는 것은 엄연히 재산 절도에 해당된다. 이들은 ‘더 많은 보상금’을 노리는 떼잡이들이 아니라 ‘정당하게 축적한 자기 재산’이 법의 이름으로 절도당했다는 사실을 호소하기 위해 망루 위에 올라갔다.

시장친화도 아니다

그러나 경찰은 이렇게 자기 재산을 순식간에 절도당한 가게 사장님들이 아니라 법의 뒤에 숨어서 남의 재산을 짓뭉개는 법도(法盜)를 보호하려고 나섰다. 시장에서 형성된 모든 이익을 지켜줄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이익을 내주겠다고 해서 MB정권은 정권을 잡은 것이 아니었던가? 시장에서 거래되는 모든 것에 대해 법은 보호해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권리금을 법이 인정해 주지 않는 그런 법적 규제는 풀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용산에서의 죽음은 단순히 참사가 아니다. 그것은 시민의 재산을 법의 이름으로 강탈하여 시장에서 기대할 수 있는 이익의 희망을 무참하게 짓밟은 법도(法盜)들을 감싼 일부 정치경찰의 폭거이고 정권검사의 망발이다. 조그만 비즈니스를 통해 피땀 흘려 번 시민의 재산을 당장 보상하라! 그리고 이 법도(法盜)들을 비호한 자들을 척결하라! 그래야 시장-친화적이고, 비즈니스-프렌들리하다고 자처할 수 있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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