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미스님(불교 96졸)
애리조나대학 동양종교학 교수

서양에서 가장 신앙심이 깊다는 미국에서도 종교의 입지가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 종교를 갖지 않거나 혹은 특정 종교를 믿으면서도 교리의 모순이나 교단 및 종교인의 부조리에 염증을 느낀 사람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에서 말하는 절대성과 신비로움보다는 개인의 감정과 느낌을 바탕으로 한 세계관이 설득력을 더해가고 있고 이제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한 종교 역사 수업 시간에 불교와 정치관계에 대해 강의할 때였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불교의 정치성에 대해 비판하면서 모든 종교가 세속의 사회 현상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의견이었다. 흥미롭게도 한 학생의 답변이 눈에 띄었다. 성경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그는 스님들의 수행을 단순히 권력과 돈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만 간주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발언에 동조하는 학생은 소수였다. 비판적인 대다수의 의견에 묻히고 말았다.

이 학생이 나를 놀라게 했던 점은 설득력을 잃어가는 자신의 종교를 지키기 위해 불교의 순수한 종교성을 강조한 사실이다. 물론 비교적 개방적인 대학 강당에서 생긴 에피소드이긴 하지만 미국종교의 실상을 반영한다. 창조신과 인간의 원죄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의 세계관과 윤리관은 점차 힘을 잃어가고 교회를 떠난 개개인의 체험을 중심으로 한 삶의 추구가 만연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미국에서의 변화를 개인적 수행 그리고 깨달음을 강조하는 불교적 사고로 전환되어가고 있다고 기뻐하는 이들이 있다. 명상수행과 공생공존의 연기법을 바탕으로 한 불교적 삶이 미국인들의 공감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적지 않은 미국인들이 여러 형태의 명상을 수행하고 있고 일반심리 상담에서도 불교적 사고와 인생관을 적용하고 있다는 예를 자주 든다.

그렇다고 미국이 불교적인 사고로 전환해 가는 지는 의문이다. 문제는 종교가 비판 아니면 무관심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으며 불교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정착된 불교의 승단, 교리 그리고 의식을 미국에선 보기가 힘들다. 더군다나 불교명상이나 교리가 불교라는 이름을 잃은 지 오래다. 불교를 수행하는 많은 이들이 불교라는 타이틀에 불편해 한다. 그래서 미국에는 수행하는 사람은 적지 않지만 불자라고 하는 이들은 드물다.

사실 개인주의가 팽배한 미국사회에서 구속적인 종교보다는 각 개인의 자유와 삶의 질을 강조하는 탈종교적 삶이 당연한 흐름일지 모른다. 이러한 특수한 상황 때문에 마음을 닦는 명상의 필요성과 세상을 불가분, 연기법적으로 보는 사고가 자연적으로 생기는지도 모른다. 외부에서 보는 이는 불교적 사고로의 전환이라 말할 수 있겠지만 당사자들은 불교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탈종교화, 탈불교화하려는 미국인들에게 불교적 사고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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