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콘서트’의 저자 황광우 씨에게 듣는 인문학의 위기

<동대신문=이신혜 기자> “졸업해서 뭐 먹고 살래?”
“무슨 놈의 철학이 밥 먹여 주냐? 철학을 했다간 입에 풀칠도 못해”
우리는 흔히 어떤 전공을 선택하는 것에 따라 어떠한 인생을 살게 될 것인지 결정된다고 본다. 이 때 내린 결정이 한 사람의 성공여부를 결정할 정도로 많은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사실이다. 위의 대화는 수능을 마치고 한 고교 3학년이 인문학 분야의 한 학과에 지원한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이다. 학생의 적성을 고려하기 보다는 돈벌이에 유리한 학과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오늘날 고등학교 입시 상담실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이와 같이 인문학에 대한 냉담한 반응은 고등학교 내 입시상담실, 채용 박람회뿐만 아니라 학문을 탐구하는 대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 2006년 네티즌이 선정한 올해의 책 '철학콘서트'의 저자 황광우 작가

인문학 위기의 현 주소

최근 우리대학은 2009학년도 입학 정원 조정안을 지난 6월 최종 확정했다. 그리하여 철학과와 독어문화학과 등 인문학 분야의 학과를 포함한 8개 학과에 대해 정원감축이 이뤄졌다. 인원 감축 대상 학과 학생들은 “쓸모없는 공부를 한다는 식의 시선이 원망스럽다. 대안 없는 위기론만 자꾸 외쳐대니 홀대가 더 심해지는 것 같다”며 불만을 쏟아냈다.

우리 대학뿐만 아니라 다른 대학도 인문학 관련 학과생들의 저조한 취업률과 함께 95년도 이후 점진적으로 확대 실시한 학부제와 이중전공제 등의 대학 정책으로 인문학 관련 학과는 통폐합, 또는 폐과의 대상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더불어 국가전체 연구개발 투자 예산 가운데 인문학 관련 부문의 지원금은 0.73%에 지나지 않으며, 인문학 교수들이 정부 지원금을 얻기 위한 장기 과제 신청 채택률이 10%에 지나지 않고 있다. 수많은 양질의 연구들이 지원을 받지 못해 인문학의 위기는 장기적으로 지속되고 있다.

황광우 작가, 그는 누구인가

‘실용’과 시장주의를 내세우는 사회적 분위기로 인한 인문학 홀대에 관해 ‘철학콘서트’의 저자 황광우 씨는 “대학만큼은 시장주의에 휘둘려서는 안된다. 대학은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의 안식처다”며 인문학을 지켜줘야 하는 대학의 역할을 강조했다.

황작가는 광주 출생으로 고교시절 반독재 시위를 주도하다 구속 및 제적을 당했다. 그는 모순된 현실 속 인간으로서의 권리가 억압 받는 것에 대해 대항하는 학생이었다. 그는 2년 뒤 검정고시를 거쳐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에 입학해 ‘삶은 무엇인가’라는 해답을 찾기 위해 고전을 읽었다. 그는 학생운동으로 인해 두 번째 제적을 당했고 1979년 투옥으로 이어졌다. 그는 감옥 안에서 2년동안의 학습 계획서를 세워 동,서양의 고전들을 읽었다. 그는 투옥 중 마주한 고전을 통해 인간의 삶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에 대해 깊이 사고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후 황작가는 현실 내 인간을 둘러싼 사회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그는 1990년대에 진보정당 운동에 앞서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모색했을 뿐만 아니라 2002년에는 민주노동당 중앙 연수원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광주 ‘다산학원’에서 원장선생님으로 학생들에게 논술을 가르치고 있으며, 제자들에게 한달에 고전 한권씩을 읽도록 지도하고 있다. 고전을 통해 인간에 대한 이해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보다 넓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가 평생을 고전과 더불어 살아오면서 쌓은 정신적 자산 ‘철학 콘서트’는 2006년 네티즌이 선정한 올해의 책으로 뽑혀 그의 철학에 대한 열정이 많은 독자들에게 인정받았다.

 

 

“인문학, 정부의 지원 절실”

▲  제자들과의 역사기행에 대해 설명하는 황광우 작가

그는 인문학 뿐만 아니라 학문 전체가 심각한 위기라고 진단했다. “취직과 돈벌이에만 매달리는 풍토가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문학 뿐만 아니라 진리를 탐구하는 학자의 정신이 천대 받는 것이 현 상황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 1970년대 가난을 면하기 위한 성장논리는 이해하지만, 경제 성장을 이룩한 현재는 인간다운 삶의 조건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돈벌이가 되는 학문만을 지원해 주기 보다는 인간을 위한 학문에 지원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인문학의 위기를 해결할 대안 논의에 관해 대학 측이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인문학 관련 학과의 수요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재정문제로 허덕이는 대학 측은 어쩔 수 없이 인원감축과 폐과를 단행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그는 정부 측의 장기적인 지원정책이 뒷받침이 되어야 인문학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역설했다. 더불어  “생존경쟁이 일상화된 현대사회에서 인간은 물질과 정신의 부조화 상태를 보인다. 이런 물질과 정신의 부조화 상태는 심리적 불안과 정신적 위기를 부르는데, 정신적 항상성을 맞출 수 있는 것이 인문학의 역할”이라며 시장주의가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서 인문학의 역할을 거듭강조했다.

인문학의 잠재력과 나아가야 할 방향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잘못된 생각 중 하나는 인문학의 위기가 경제학적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없다는 데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그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글로벌한 경쟁력을 가진 것이 인문학이라고 망설임 없이 이야기했다. 더불어 응용학문이 단기적으로 이익창출을 한다면 인문학은 상상력과 창의력이라는 장기적 경쟁력을 제공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불교 철학을 필두로 한 전통적 인문학이 강세인 동국대학교의 특징 또한 새로운 경쟁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 세계적 철학 결집대회가 우리 사회 내 미비한 상황에서 이를 동국대에서 마련한다면 큰 의미를 지닐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러한 인문학의 무궁무진한 잠재력에 대해 강조하며, 나아가야 할 현실적 방향도 같이 제시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인문학 관련 도서를 기피하는 상황을 들며, 정부가 고전읽기 대회를 주최하여 고전을 읽는 환경을 조성해야한다고 말했다. 또한 대학당국이 대학 입학시험에 고전관련 시험을 추가해 읽어야 할 고전목록을 제시하고, 이에 따라 정부는 각 학교에 문학, 역사, 철학 전공자가 고전읽기 교사로 임용될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사회는 인문학을 전공한 학생들을 ‘선택의 오류’를 범한 사례인양 바라본다. 그러나 그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라”라는 조언으로 인문학도들을 격려했다. 인문학의 위기라는 화두가 서서히 떠오르고 있는 현재, 우리 사회가 인간적 가치를 회생시킬 기회 또한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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