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대학 동굴탐험연구회와 함께한 강릉 ‘임곡굴’ 탐험기

<동대신문=김활란 기자> 사람들마다 세상을 나누는 기준은 각기 다르다. 패러글라이딩처럼 하늘을 날아다니는 이들에게 세상은 하늘과 땅으로 나뉠 것이며, 스킨스쿠버처럼 바다 속을 누비는 이들에게 세상은 바다와 땅으로 나뉠 것이다. 그리고 여기 같은 땅 위를 동굴 안과 동굴 밖이라는 세상으로 구분하는 이들이 있다. ‘동굴탐험연구회’동아리 사람들. 그들이 보여주는 또 다른 세계를 찾아 강원도 강릉시 임곡 2리에 위치한 ‘임곡굴’ 탐험에 동행했다.

‘길 없는 길’의 연속, 탐험

대개의 동굴탐험이라 하면 벽이나 천장에 걸린 조명이 비추는 대로, 잘 닦여진 길대로만 따라가면 어렵지 않게 구경할 수 있는 관광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전부다. 아마 동굴탐험연구회식의 동굴탐험에 대해서는 전혀 상상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우리학교 동굴탐험연구회가 보여주는 동굴탐험은 분명히 ‘관광’의 개념과는 다른 그야말로 ‘탐험’이다. 탐험이라는 단어가 가진 의미 그대로 미지의 세계를 향한 인간의 욕구가 아니고서는 단지 로프 하나에만 몸을 의지한 채 자신의 손과 발을 전부 삼아 탐험하기란 꽤나 힘든 선택이 될 것이다.
이른 아침부터 동굴의 위치 파악을 위해 GPS(위성 위치 확인 시스템)와 지도가 동원된다. 탐원 대원들은 지도를 통해 대략적인 동굴의 위치를 알아내고 동굴에 들어가기 위한 사전준비 체크에 여념이 없다. 동굴 내부에서 길을 잃어버렸을 시 ‘길’의 역할을 해 줄 튼튼한 로프를 가방에 챙겨 넣고 길의 방향을 잡아 줄 측량도라는 동굴 지도를 지퍼백에 담아 넣는다. 만약 발생할 지도 모를 급격한 체력 저하에 대비해 초콜릿과 같은 간단한 음식도 준비한다. 동굴에 들어가기 위한 사전 준비물을 챙긴 뒤에는 방수와 체온유지의 기능을 갖춘 탐험복을 입고 헬멧을 쓴다. 헬멧을 쓴 뒤에는 헬멧에 헤드랜턴(전등)을 끼우고 랜턴의 상태를 확인한다. 랜턴의 여분 배터리 또한 랩으로 포장해 탐험복 속의 주머니에 넣는다. 마지막으로 무릎까지 올라오는 장화를 신고 탐험 준비를 마친 후 길을 나선다.  

GPS, 측량도는 필수 장비

▲ 동굴탐험 장비들

야영장에서부터 한참을 걸어 내려와 동굴이 자리하고 있을 산의 위치부터 찾는다. 일반인들에게는 개방이 되지 않은 동굴, 그 동굴의 입구를 찾는 시작부터가 결코 만만치가 않다. “아, 없네”, “찾았어?”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입구를 찾아 헤매길 한 참, 동굴 입구를 발견했다며 탐험 대원 유주상(사회환경시스템3) 군의 발걸음이 분주해진다. 기껏해야 어린아이 한 명이, 그것도 누워야만 지나갈 수 있을 법한 공간 앞에서 그는 입구를 발견했다고 소리쳤다. 기껏해야 큰 바위 두 개 사이의 틈새 같기만 한 입구였기에 “입구가 도대체 어디 있다는 거에요?”라는 물음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순간, 동굴탐험연구회 동아리의 탐험에 동행하고 싶다는 말을 처음 건넸을 때 김석윤 대장이 했던 대답이 떠올랐다. “자신 있으세요? 왜 하필 이렇게 힘든 취재를 고르셨어요” 진심어린 걱정으로 한 그 말이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야영장에서부터 매고 내려 온 가방들을 내려놓은 채 탐험대원들이 먼저 동굴 입구의 바닥에 누워 등과 발을 이용해 내려가기 시작한다. 등과 발로 흙바닥을 밀어가며 영화 속 순식간에 움직이는 벽 속으로 빨려 들어간 주인공처럼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 잠시 뒤 대원들이 들어간 통로로 모든 짐이 전달되고 “들어오세요”라는 말이 통로를 통해 전해진다.

자신의 손과 발만 믿어라

이번 탐험의 대장 조익수(신방4) 군은 “자신의 손과 발만 믿으시면 돼요. 자신의 신체를 믿지 못하고서는 결코 나아갈 수가 없어요” 라며 기자에게 자신감을 불어 넣어 준다. 동굴 내에서는 로프도, 머리를 보호해주기 위해 착용한다는 헬멧도, 몸에 착용할 수 있는 어떤 도구도 100%의 안전을 장담할 수는 없다. 내 손이 지탱하고 내 발이 디디는 이 지점이 안전하리라는 믿음만이 가장 우수한 안전장치를 착용하게 되는 것이다. 동굴 안으로 빨려 들어오자마자 여기저기 흐르는 물소리와 때 이른 한겨울이라도 찾아온 듯 9℃의 냉랭한 공기에 입김이 저절로 나온다.
자연은 누군가의 소유가 될 수 없다고 했던 말 그 실천은 바로 이렇게. 탐험대장은 종유석 하나 만들어지기까지 적어도 50년이라며 동굴 안에서 어딘가를 짚을 때에는 항상 조심하라는 당부를 아끼지 않는다. 인위적인 힘 하나 보태지 않고 자연이 그저 세월을 도구 삼아 만들어 놓은 동굴. 자칫하다가는 수 십 년간의 세월을 깨 버리게 된다. 탐험을 하는 이들의 안전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바로 동굴의 안전이다.  
동굴 밖의 세상에서는 길을 찾기 위해 지도를 사용하지만 동굴 안의 세계에서 지도는 곧 ‘측량도’ 이다. 미리 만들어 놓은 동굴 내부의 측량도를 통해 한 걸음씩 걸음을 옮긴다. 다리도, 허리도, 머리도, 신체 부위 중 어느 곳도 곧게 펴고 편히 걸어갈 수 있는 길은 없다.

“종유석 하나라도 건드리면 안돼”

토끼뜀을 뛰는 듯한 자세로 한 발씩 디뎌가며 머리 바로 위의 종유석, 바닥에서 자라난 석순 어느 것 하나 훼손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어쩌면 본인들의 안전한 탐험보다 동굴 내의 자연환경이 우선일지도 모르는 탐험대원들. 가는 내내 “길이 어디 있어요?”라는 질문을 아마 가장 많이 했을 것이다. 편평한 대지 같은 길도 없었지만 그나마 길답다고 생각했던 길도 없었던 길들. 어릴 적 호기심에 들어갔던 원형 파이프 통 속을 지나듯 답답하고 불편했던 길, 시리도록 차가웠던 길, 심지어 그런 길들 조차도 잃어버리기 일쑤였다. 길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들 때쯤 탐험 대원들은 감히 길이라 부르기도 어려운 험난한 곳들을 가리켰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길과 동굴탐험연구회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길의 개념은 전혀 다르리라 짐작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쭉 앞서 나가지 않고 가끔은 위를 가리키며 바위에 몸을 지탱해 타고 올라가라는 길들은 정말 상상 밖이었다. 두 팔을 장비 삼아 디딜 수 있는 바위의 틈새에 발을 디디고 오직 팔의 힘으로만 다음 길이 생기는 곳까지 올라가야 한다.

21C형 콜럼버스들의 모임

어쩌면 동굴탐험연구회는 하나부터 열까지 ‘힘들다’라는 주제에 관해서만 나열해도 끝이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꼭 열 한 번째 부터는 모든 것에 예스를 해버리게 할 만큼 묘한 반전이 생기게 하는 매력이 있다.
자신감 향상을 위한 웅변 학원도 체력을 기르기 위한 헬스도 학교 내 가장 좋은 일석삼조의 동아리를 너무 모르고들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감 향상 하나, 인내심 및 체력 기르기 둘, 무엇보다도 중요한 값비싼 전시관의 무료 관람표 셋. 이런 공짜는 좋아해도 대머리라는 결코 곤란한 상황은 오질 않는다. 먼 옛날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던 콜럼버스. 콜럼버스처럼 새로운 대륙의 발견은 아니더라도 자신만의 또 다른 세계를 발견해 보는 것은 어떨까. 튼튼한 손과 발만 가진 이라면 누구나 제 2의 콜럼버스를 꿈꿀 수 있다. 다만 두려운 마음의 방향을 바로 잡아 줄 용기 나침반은 필수다.

▲ 동굴탐험 연구회 회원들의 석회동굴 탐험모습.

최초와 최고라는 타이틀
동굴탐험연구회가 걸어온 길
 
국내 동굴에 대한 학술조사와 보존을 목적으로, 동굴의 역사와 함께 걸어 나가겠다는
야무진 포부로 결성된 동굴탐험연구회는
1969년, 국내 대학 최초라는 타이틀을 달고
시작됐다.
“선배들이 워낙 탄탄하게 기초 공사를
잘 다져 주신데다 지금 활동하는 YB들도
잘 따라주는 덕택에 국내 동굴 자료 중에는
없는 자료가 없어요” 라며
“오히려 현재 보존되어 있는 자료 외에
새로운 동굴을 발견한다는 게
더 신기한 일일걸요”
OB와 YB간의 끈끈한 가족애가
만들어 낸 업적.
직접 부딪히며 겪어 온 착오의 결과 뒤
맛보게 된 당당한 자부심이다.
국내 최초, 그리고 최고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 동굴탐험연구회.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로 꼽힌다는
‘환선굴’의 측량도를 그려 넘긴 장본인들도,
갈르와라는 화석 벌레를 발견해
‘동대갈르와’라는 명칭으로
학계에 등록되는 영광을 기록한 이들도
모두 역대 동굴탐험연구회의 대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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