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에서 보낸 시간들을 돌아보면, 몇몇 사람들의 얼굴이 우선 떠오른다. ‘보지만 말고 말 걸자’는 나름의 원칙 덕분에, 기억 속의 시간들은 오롯이 ‘그때 그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 중국에서 배운 것도 느낀 것도 사람들의 얼굴 속에서였다.

개막식을 몇 시간 앞둔 때, 왕푸징에서 거리 인터뷰를 통해 베이징의 얼굴들과 처음 만났다. 그곳에서 ‘스마일 베이징, 친절한 베이징’을 실감할 수 있었다. 웃고 있는 베이징의 얼굴들은, 그들의 성공적인 올림픽 염원이 만들어낸 가장 큰 변화다. 이날 인터뷰한 외국인들도 하나같이 “사람들의 친절함에 놀랐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자원봉사자 윌리암 원더 씨는 이렇게 말했다. “잘 봐라. 베이징 사람들이 이렇게 친절한 걸 본적이 있느냐”

올림픽에 대한 중국 사람들의 애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이번 올림픽은 그들에게 단순한 축제를 넘어 ‘과거 번성기 때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라는 원 드림(one dream)이었다. 통제와 규제로 점철한 중국 정부의 원 월드(one world) 정책이 가능했던 것도 이들의 나라사랑, 올림픽사랑 덕분인 셈이다. 개막식 날, 시내의 지하철과 도로가 모두 통제되었다. 왕푸징에 모인 사람들 모두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곤혹을 치렀지만, 그들은 어떤 불편도 ‘기꺼이’ 감수하는 듯 보였다.

올림픽이라는 축제와는 멀리 있었지만, 삶에 대한 애정을 보여줬던 판자지엔 사람들도 내겐 잊지 못할 추억이다. 골동품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그들은, 자신의 일이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는 진짜 예술가들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까” 마치 미리 입이라도 맞춘 듯이 수줍게 털어놓는 그들의 진심이 이야기를 받아 적는 나까지 설레게 했다. 마찌엔캉 씨가 보여준 손 때 묻은 도장 작품집, 놀러오면 3층집에서 재워주겠다며 딱 한 장 뿐이라던 명함을 손에 쥐어주신 운남성 할머니. 그야말로 내 애정이 담긴 기억이다.

애정하면 베이징에서 느꼈던 선배들의 학교사랑, 후배사랑도 빼 놓을 수 없다. 중국에 머문 동안 우리 기자단은, 선배님들 댁에서 홈스테이를 했다. 하루 밤만 묵어도 당국에 신고해야 하는 엄격한 체류 법에 따라, 각 집마다 거주 등록을 하느라 애를 먹었더랬다. 선배님들 덕분에 우린 잘 먹고 잘 지내다 왔지만, 열흘간 함께 지내면서 여러모로 불편하셨을 거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88 서울올림픽 당시 그 어떤 기억도 갖고 있지 못한 나로서는, 이번 올림픽 현장 체험이 무척이나 의미 있었다. 책으로 기사로만 접한 중국은 그야말로 ‘백문이 불여일견’이었고, 그곳의 열기를 만나고 취재하는 일은 짜릿함 그 자체였다. 24일, 한국에 돌아와 TV로 폐막식을 지켜보고 있자니 괜히 아쉬운 마음까지 들었다. 손님이었던 내가 이런데 말이야. 그 뜨거운 애정을 과시하던 베이징 사람들은 얼마나 허전해했을까. 그들은 이제 무슨 재미로 사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올림픽취재단 학생기자(국문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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