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인간연습’이라는 말을 했다. 인간은 기나긴 세월동안 무엇인가를 모색하고 시도하면서 더러는 성공도 많이는 실패도 한다. 그러나 다시 새롭게 시도하며 고단한 되풀이를 하는 이유는 바로 인간이 인간답게 살고자 한 연습과도 같기 때문이다. 신문사에 들어와 자유보다는 구속을 더 즐겨야 했고, 여유보다는 빽빽한 일상 속에서 조급함에 익숙해야했다. 하지만 나는 인간다와지기 위한 연습을 하고 있었다.

내게는 유난히도 더웠던 올 여름, 우스꽝스러울지도 모르지만 복날이란 복날은 모두 챙겨가며 몸보신을 위해 애썼다. 갓 들어온 수습 딱지를 달고 취재 하기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늘 출입처 문 앞에서 들어갈 시기를 두고 몇 번이나 고민을 했던지, 6개월 동안 뺀 땀을 보충하기란 복날 모두 충실해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나의 수습생활은 실수의 연속이었다. “모든 것이 막연하기만 했기에 그랬다”, 구차하지만 굳이 붙인 변명이었다. 우리대학에 20억 이라는 대단한 규모의 기부로 떠들썩했던 이방주 사장의 소식을 나는 조선일보를 통해 알았다. 내가 책임져야 하는 출입처에서 나온 소식임에도 나를 제외한 모든 언론사 기자들이 먼저 사실을 알았다. 허술하고 빈틈 많은 취재의 현장들이 순간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기자로서의 ‘자질’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세’ 정도는 준비 되어있다고 자부했음은 착각에 불과했다. 특종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뒷북치는 보도는 지양하는 것이 기자로서의 자존심인데 말이다.

탈수습이라는 말, 아직은 그야말로 감개무량한 단어다. 여전히 인터뷰가 잡히면 어떤 질문을 해야 할지 20개를 뽑아 10개를 골라낸다. 짧은 단신을 쓰면서도 꽤나 애를 먹는 지금이다. 무난히 지나가길 바랐던 마음이 더 컸기에 수습 딱지를 떼어낼 만큼 상처가 충분히 아물었는지 두렵기만 하다.
휴대전화에 02-2260-XXXX이라는 번호만 떠도 혹시 또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닌지 통화 버튼을 누르기가 망설여진다.

대학가의 분위기를 느끼기에 신문사는 방해만 되지 않느냐는 핀잔은 너무 익숙하게 들어온 소리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내가 그 야유에 대한 반문을 제기할 차례다. 혹시 새로운 사람을 만나 취재하고 기사를 쓸 때의 그 짜릿함을 느껴본 적은 있는지, 그런 특권을 가져본 적이 있는지 말이다.
어쩌면 내일도 통화 버튼을 누르는 시간이 길어질지 모르지만 역시나 난 그 유쾌한 특권을 포기할 수가 없는 기자 김활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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