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육원 강의 시작한 이 시대의 반칙왕 윤강철 씨

▲강단 위에서 강의하는 윤 선수
 
 
“Let's go 강철, Let's go 아이언맨”
빠른 비트의 음악이 깔리고 링 위에서 불꽃이 ‘팍’ 튄다. 관중들의 환호 속에 ‘아이언맨’ 윤강철(35) 선수가 등장한다. 링 위에 올라 두르고 있던 망토를 벗어 관중석을 향해 던진 후, 링 위로 날아 오른다. 공중으로 도약해 두 바퀴를 단숨에 휙 돌아 관중들을 더욱 큰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간다.

링 위에서는 화려한 기교를 선보이는 레슬링 선수로, 평소에는 퀵서비스 배달맨으로, 또한 목요일 저녁이면 우리학교 사회교육원에서 프로레슬링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화려한 이력을 가진 프로레슬러 윤강철씨를 만나봤다. 링 밖에서 만난 윤 선수는 온몸 가득히 밴 땀, 먼지 잔뜩 묻은 검은 손까지 영락없는 퀵서비스 배달맨이다. ○○ 산업개발이라고 쓰인 하얀 티와 갈색 뿔테안경을 쓰고 나타난 그는 옷 안에 가려진 근육이 아니면 프로레슬러라고 감히 상상하지 못할 듯하다.

현실을 넘어 꿈을 이루다

“어린시절부터 김일 선생님의 경기, 미국 프로레슬링을 보면서 자랐어요. 가슴 한편에 항상 프로레슬러의 꿈을 가지고 있었죠.” 후에 사회생활하면서 꿈은 꿈으로 가슴 한쪽에 조용히 접고, 직업군인으로 안정된 생활을 했었다. 하지만 자신의 오랜 꿈을 이루겠다는 일념으로 뒤늦게 동명대학교 생활체육학과에 진학해 프로레슬러의 길을 걷게 되었다.

하지만 프로레슬링만으로는 생계유지를 할 수 없었다. 비인기 종목이라 수요가 많지 않아 돈벌이가 시원치 않았던 것이다. 다른 일자리를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고. 처음부터 퀵서비스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단다. 일반 체육관이나 헬스클럽을 알아봤지만 나이가 많아서 취직이 쉽지 않았다. “공장에서도 일해봤는데 12시간씩 교대근무라 운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없어요. 일하다 말고 팔굽혀펴기를 할 수도 없고, 퀵 서비스 일한 것도 나름 연구한 겁니다. 중간중간 대기시간에 운동하는데 활용할 수 있으니까요.”

그의 하루는 눈코 뜰 새가 없이 바쁘다. 5시에서 일어나 동네 주변을 뛰고 기초체력 단련을 한다. 계속 운동을 하다가 일이 들어 오면 삼각김밥이나 빵을 차 안에서 먹으면서 일을 하러 나간다. 대기시간에 중간에 나무나 전봇대에 고무줄을 매달아 당기고, 팔굽혀 펴기 하고 발차기 등 틈틈이 연습한다. 새벽에 자다가도 일이 들어 올 때는 일하러 나간다고 한다. 일과 운동을 병행하다 보니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정도다. “항상 졸려요. 체력도 달리고, 뺨을 때리면서 잠을 깰려고 노력하는데 쏟아지는 잠은 어쩔 수 없어요. 지금도 졸려 죽겠네요”라고 말하며 졸린 눈을 비빈다. 오늘은 일이 많아서 밥도 한끼도 못 먹었다는 윤 선수.

“농수산시장에서 바나나랑 토마토 산 걸 차에 실어 놓긴 했는데 먹질 못했네요. 잘 못 먹어 힘들어 빈혈이 오는 경우도 있어요. 몸 관리할 여건이 안돼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서 운동하고 일합니다.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죠”

레슬링, 그 참을 수 없는 유혹

▲경기 직전 각오를 다지는 모습

프로레슬링은 가장 화려하고 격렬하며 통쾌한 스포츠 드라마이다. 정교하게 설계된 캐릭터와 스토리, 화려한 연출, 빠르고 날렵한 공중기술 위주의 테크닉으로 관객들을 압도한다. 그의 캐릭터네임은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딴 ‘아이언맨’이다. 주인공과 악역을 넘나들면서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기교를 선보인다. 공중에서 몇바퀴 도는 것은 기본이고, 지난 레슬링 대회에서는 두꺼운 야구방망이 여러 개를 부러뜨리기도 했다. 유쾌하고 재미있는 카리스마를 가진 그는 파워풀한 모습과 함께 멕시코 스타일을 살린 화려한 공중기술을 구사한다.

연신 졸린 눈을 비비던 그가 레슬링 애기가 나오면 흥분하기 시작한다.
“나를 향해 환호하는 관중 속에서 모든 눈이 나를 쳐다보고 주시하고, 위에서 터져 나오는 스포트라이트가 나를 비춥니다. 밖에선 비록 힘들게 일하는 퀵서비스 직원이지만 그 순간은 그들에겐 난 영웅이고 링위의 또 다른 나를 느낍니다. 굉장한 열기가 저를 잠식하죠.”

배고픈 선수생활에 포기하고 싶은 맘이 굴뚝같을 것 같은데, 그는 단호히 고개를 젓는다.“한번 결심한 꿈을 포기하면 되겠습니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간에 밀고 나가야죠. 끝까지 우리 나라에 프로레슬링 하시는 훌륭한 분이 연세가 많고 젊은 친구들이 없어요. 제가 제일 젊은데 저마저 안하면 누가 하겠습니까”

다시 한 번의 영광을 위해

이제 그는 프로레슬링계의 미래를 짊어지고 있다. 지난 4월부터 우리학교 사회교육원 스포츠엔터테인먼트과 레슬링엔터테이너 양성코스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그동안 우리나라 프로레슬링은 연기적 요소는 많이 배제해 왔는데, 이번에 동국대학교에서 연기적 요소를 많이 도입했다. 미국 프로레슬링의 화려한 모습과 결합해서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만들어 갈 겁니다”라고 자신의 포부를 밝힌다.

1기 수강생들을 바탕으로 프로레슬링 인재를 배출하는 것이 그의 바램이자, 프로레슬링이 옛날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 “이번 1기를 시작으로 2, 3기까지 꾸준히 양성하면 프로레슬링에 젊은피가 수혈될 것으로 봅니다. 그 길을 제가 닦는거죠. 그렇게 되면 레슬링이보다 발전할 겁니다.”
반칙이 난무하는 삭막한 사회에서 프로레슬링은 아름다운 반칙이 허용되는 곳이다. 프로레슬링의 반칙은 경기의 흐름을 재밌게 만들 수도 있고, 키 1미터 70센티 짜리 단신이 2미터 넘는 거인을 기술을 걸어 넘어뜨려 이기기도 한다. 약육강식의 현실상황에서는 거의 있을 수 없는 황당한 일이 프로레슬러 세계에서는 가능하다.

그는 “강자가 약자의 기술을 받아 넘어가 줄 수 있는 약자에 대한 배려, 그것이 바로 아름다운 반칙입니다”라며 “이것이 프로레슬링에서 가르쳐 줄 수 있는 철학”이라고 말한다. 온갖 고난과 역경을 꿋꿋이 이겨나가는 외로운 이 시대의 반칙왕에게 조용한 박수를 보낸다.

사진=고유석 객원기자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