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문화체험기- 강화도 연등국제선원을 다녀와서

여유로운 산사의 휴식
아무 것도 마음에 담지 않고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는 경지에 이름.
이를 뜻하는 ‘무념무상’이란 말이 있다.
시험이 끝난 주말, 연인과 헤어진 친구... 피로와 스트레스에 지쳐 짧은 시간 안에 이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르고자 하는 이, 1박 2일 주말 템플스테이를 떠나자.

5월 12일은 부처님 오신날이다. 징검다리 연휴가 있는 주말 오전, 서울근교로 템플스테이를 체험하러 나섰다. 신촌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온수리 행 버스를 타면, 한 시간 거리에 인천시 강화군에 위치한 ‘연등국제선원’이 있다. 국제선원이라는 이름답게 외국인 스님이 영어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한국의 전통 문화체험을 하기 위해 왔다는 외국인들로 북적거린다. 미국, 영국, 캐나다, 아일랜드, 체코, 스위스 등 스님들의 국적과 참가한 외국인들의 국적 또한 제각각 천차만별을 이루고 있다.

다양한 국적, 다양한 차림의 참가자들이 세속의 옷은 잠시 가방 안에 넣어두고 모두 같은 회색 법복으로 갈아입는다. 법복을 입은 자신들의 모습에 다소 어색한 미소로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한결같이 편한 모습으로 풀어지는 모습에 웃음이 난다. 이렇듯 회색 법복은 배꼽티를 입고 문신을 하고 피어싱을 한 외국인들까지 모두 소박하고 편안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는 것이리라.

주지 스님과 함께 한 다도 시간
템플스테이에 참여한 사람들
아침 예불을 드리는 모습
‘단 한 톨도 안되느니라’ 발우공양

점심시간이 지났음에도 이동 중에 점심식사를 놓친 참가자들을 위해 보살님들께서는 따뜻한 점심식사를 준비하신다. 허나 일반인들이 속세와 절의 차이를 직접 피부로 느끼기 시작하는 시간이 다가왔으니, 바로 이 ‘발우공양’ 시간이다. 편식하는 어린이의 적. 김치와 장아찌, 간을 최소화한 나물 무침이 전부인 소박한 반찬에 외국인이 아닌 우리나라 사람들 역시 당혹한 표정이 역력하다.

공양게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고?
내 덕행으로 받기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건강을 유지하는 약으로 알며
진리를 실천하고자
이 음식을 받습니다

자극적인 입맛에 익숙한 이 속세의 인간들에게 발우(鉢盂) 앞에 놓인 이 ‘공양게’가 호된 질책을 가한다. 발우공양이란 단순히 밥 한 끼를 먹는 것을 이야기함이 아닌 것이었다. 수행의 한 과정이라고 말하는 절의 이 식사 예법은 모든 사람이 같은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고 해서 평등정신을, 조금의 낭비나 밥 한 톨의 남김도 없어야 하기에 청결 정신까지 담고 있다고 한다.

‘Let it be’ 자연과 함께하는 참선 수행

저녁예불 후에는 하루를 마감하는 참선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학교 학생이라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자아와 명상 강의, 좌선법을 기억하는가? 이를 배운 기자도 스님의 죽비 소리와 함께 시작한 1시간가량의 반가부좌 참선이 힘들 진데, 의자문화에 익숙한 외국인들은 오죽했을까. 고된 하루를 증명하듯 들리는 어떤 이의 코고는 소리에 살포시 웃음 짓게 된다.

참선 수행 중 창밖너머에서 들려오는 자연의 소리는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 해 준다. “Let it be, Let it be… 집착하지 마세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십시오”란 스님의 말씀과 함께 깊은 밤 개구리 울음소리와 새벽의 청명한 새 소리는 바로 ‘자연’이 무념무상과 마음의 평화로 이끄는 자연치료제임을 알게 해준다.

나를 낮추었더니 내가 보이더라, 108배

새벽 3시, 아직은 찬기도 식지 않은 캄캄한 어둠속에서 고요히 산사를 울리는 아침 타종을 시작으로 템플스테이의 또 다른 하루는 시작된다. 간밤에 속세의 잠버릇 그대로 늦은 시간까지 잠을 이루지 못한 참가자들은 눈곱도 채 떼지 못한 채 대웅전 법당 안으로 하나 둘 모여든다.

“108의 의미는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번뇌의 수를 말합니다. 우상을 섬긴다 생각지 마시고, 나를 낮추는 과정이라 생각 하고 수행 하십시오” 스님의 말씀을 시작으로 108배는 시작됐다. 30배, 50배, 80배… , 어느새 맺힌 땀방울에 어느 순간 마음속으로만 외치던 절의 횟수는 무의미하다고 느껴진다. 108배를 마치고 마시는 ‘이가 시린 약숫물’ 한 바가지에 108배의 동안 지친 몸의 피로와, 속세에서 다친 마음의 피로가 함께 씻겨 내려감을 느낀다.  

다양한 프로그램 체험

외국인들과 어린학생들에게도 스스럼없이 농담을 던지시며 ‘어렵고 엄숙하지 않는 절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씀하시는 주지스님이신 우현스님. 인자한 눈주름에 새로 깨달은 이의 여유와 너그러움이 엿보인다. 둥글게 모여 앉아 주지스님이 직접 우린 차를 마시며 속세의 번뇌를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고려시대의 문호인 이규보의 묘와 생가 체험 및 ‘진리의 길로 이끄는 등’이라 불리는 전통 연등을 만들기는 외국인 참가자에게는 잊지 못할 경험이 된다.

템플스테이는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사찰에 숙박하며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한국의 전통 불교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곳’으로 외국인들에게 먼저 알려지기 시작했다. 초반에는 단순히 스님들과 함께하는 절 체험에서 요즘은 역사탐방, 영어 템플스테이, 사찰 음식 만들기 등 산사의 문턱을 낮춘 다양한 프로그램을 갖추는 절이 늘고 있다. 

‘고된 밥벌이에 지친 직장인들, 아이들을 함께 데리고 오는 가족들의 신청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템플스테이의 인기는 분명 이유가 있다. 템플스테이를 끝내고 돌아서는 길, 여전히 남아있는 그 울림이 식상하지만 ‘감동’이라는 단어로 밖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짧지만 소중한 주말, 종교를 떠난 산사 속 체험이 사람에게 얼마나 큰 울림을 주는지 직접 느껴보는 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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