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현 교수 (문과대학 사학과)
 망설이며 창가에 서 있습니다. 봄이 온 것 같아서 문을 열려다 말고 아직은 찬바람 걱정에 머뭇거리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문도 많습니다. 성문과 대문과 방문과 창문이 있고, 남문과 북문이 있으며, 앞문과 뒷문도 있고, 불문(佛門)이나 법문(法門)과 같은 무형의 문도 있습니다. 마음의 문도 있습니다. 모든 문은 경계에 있으면서도 그 경계를 허무는 통로가 됩니다. 그래서 문은 여닫게 되어 있고, 사람들은 그 문을 통해서 드나듭니다. 물론 바람도 왕래합니다. 문은 안으로 들어갈 수도 밖을 향해 나갈 수도 있습니다. 원효는 말했습니다. 들어감이란 자리(自利)를, 그리고 나간다는 것은 이타(利他)를 의미한다고. 

 문은 열어야 하지만, 그러나 마냥 열어놓을 수만 없습니다. 도둑 들지 않게 단단히 잠가야 하고, 파리나 모기 날라들지 못하도록 방충망이라도 달아야 하고, 흙먼지 새어들지 않도록 틈새도 막아야 합니다. 그리고 좋은 친구가 오면 마음의 문까지도 열어야 합니다.

 문을 열거나 개방하면 다 좋은 것인 줄 착각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열린우리당’은 열린 세상 열겠다던 사람들이 만든 당이었습니다. 엊그제 그 당 만들더니, 그 정치꾼들 열린 문으로 다 나가버리고 어느새 그 간판 내리고 말았습니다. 그 당 집권 시에 개방했던 숭례문, 그 멋진 누각에는 노숙자들이 찾아들었고, 무례한 그들의 잠자리가 되고 술자리가 되어주던 국보 1호는 급기야 야만의 손에 의해 불태워지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우리들 자존심도 무참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분명 개방만이 좋은 것은 아닌 가 봅니다.  

 아직도 연구실 창가에 서서 망설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망연히 서 있습니다. 신정아, 사필귀정, 철 밥통, 강의평가 공개, 고객 만족, 상품, 로스쿨, 등등의 단어들, 귀에 쟁쟁한 이 단어들의 의미조차 쉽게 이해되지 않는, 아 그래서 나는 속절없이 흘러가 버린 세월에 당황해 하면서 멍청하게 서 있습니다. 교단에 선지 30년 가까운 세월, 그래도 나는‘상품’이라도 되었다는 자부심(?)으로 어지럽습니다. 

 ‘상품’은 공개했지만, 정작 공개가 필요한 것은 아직 남았습니다. 사실 교수들의 거의 모든 것은 일찍부터 공개되어 있었습니다. 연구실도 강의실도, 그리고 연구 결과도. 그리고 철 밥통으로 밥 먹는 교수는 물론 없습니다. 차라리 연구실에서 배가 고플지언정. 찬바람에 감기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추워도 마음의 문만은 닫을 수가 없습니다. 창가에 서서 환하게 꽃 피어날 봄날을 기다립니다. 올 봄에는 황사도 많다지만, 그리고 창문 밖에는 왠지 먼지도 많지만, 그래도 추위가 풀리면 창문을 열 생각입니다. 멋진 세상을 향해.
 

김상현
문과대학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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