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한 남성이 젊은 여성의 뒤로 서서히 접근한다. 그리고 은밀한 신체 접촉을 시도한다. 카메라는 ‘진실’을 담아내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한다. 곧 철도 공안수사대가 등장해 남자를 현행범으로 체포하고, 그 과정이 긴박하게 스크린을 탄다. (tvN ‘리얼스토리 묘(猫)’의 8월 12일 방영분)

하지만 실제 상황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던 이 방영분은 모두 재연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 방송이 나간 후 일부 네티즌들이 재연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고, 한 언론사의 취재 결과 촬영에 협조했던 철도공안수사대 측으로부터 전부 재연이었음이 확인된 것이다.

이렇게 거짓말이 들통나는 경우도 있지만, 아예 ‘페이크 다큐’를 표방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tvN의 ‘현장르포 스캔들’에는 의뢰인이 피의뢰인의 불륜현장을 습격하고, 아기를 점지해 준다는 무속인에게 속아 성관계를 맺는 장면이 등장한다. 더구나 출연자들의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하고, 음성까지 변조돼 리얼리티를 더한다. 이 프로그램이 연출된 장면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공지는 불과 몇 초에 불과하다. 이 몇 초간의 공지로 거짓말 방송은 면했지만, 눈치 빠른 시청자가 아니면 재연임을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현재 케이블 채널은 이 같은 ‘리얼리티’ 프로그램들로 넘쳐나고 있다. 리얼리티 게임쇼, 서바이벌 리얼리티쇼, 짝짓기 리얼리티쇼, 리얼리티 토크쇼, 다큐멘터리성 리얼리티쇼 등 종류도 다양하다. 이 프로그램들의 의도는 분명하다. 가장 은밀한 사생활을 적나라하게 폭로해 지켜보는 관음증적인 쾌락을 제공함으로써 시청률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보다 자극적인 장면을 만들기 위한 경쟁은 거짓말과 조작의 유혹에 빠져들게 한다.

이에 대해 케이블 TV제작자들은 낮은 제작비를 탓한다. 이런 열악한 제작여건에서 엄청난 제작비를 쏟아 부은 외국의 리얼리티 프로그램과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제작비 탓만은 아니다. 수십개의 채널이 경쟁하는 다매체 경쟁 속에서 한국의 케이블 제작자들은 ‘노골적인 선정성’이라는 가장 쉬우면서도 저질스런 방식을 돌파구로 선택했다.

한달에도 십수개씩 새롭게 등장하는 케이블 프로그램들을 보라. 점점 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소재를 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지 않은가. 일상적 소재를 통해 훈훈한 감동과 진실된 웃음을 선사한다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본래 목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방송계에는 ‘자유시장에서 일반상품은 경쟁할수록 품질이 향상되지만, 방송프로그램은 경쟁할수록 질이 떨어진다’는 속설이 있다. 오늘의 케이블 TV는 이 속설이 입증되는 생생한 현장이다. 그 피해는 온전히 시청자의 몫으로 돌아가고 있다.

더 우려되는 대목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공중파 방송에서도 날로 파급력이 커지고 있다는 데 있다. 케이블과 공중파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차이는 ‘솔루션’에 있다. 현상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방송사가 문제의 해결사로 자처하고 나선다. ‘엄마를 때리는 아들’, ‘아이를 감시하는 엄마’, ‘자해하는 19세 소녀’ 등 엽기적이고 일탈적인 소재들로 시작해 최근 들어서는 부부관계, 자녀교육, 알콜중독, 가정폭력 등 다루는 소재도 다양해지고 있다.

이들 프로그램의 대부분은 극적이고 엽기적인 현상을 보여주는 데 방송시간의 많은 양을 할애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프로그램 말미에 해피앤딩을 위하여 잠시 등장할 뿐이다. ‘해결사’로 나서는 프로그램의 수가 늘어날수록 문제에 대한 깊은 고찰은 사라지고 극적인 사례를 시청률의 도구로 삼는 경우만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리얼리티’는 공중파에서도 진정성을 위한 수단이기 보다 시청률 상승의 도구인 것이다. 좋은 프로그램을 시청할 시청자의 권리는 설 자리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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