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항일유적 탐방과 고구려 충무역사 탐방

동대신문사는 지난 방학기간 동안 러시아 항일 유적지 탐방과 고구려 유적을 탐방취재했다. 지난 헤이그 특사 탐방기에 이어 이번호에는 러시아 극동지방과 중국 동북지역의 생생한 역사탐방 결과를 보도한다.
편집자

                러시아항일유적탐방경로

 

① 자루비노 항구
② 블라디보스톡 : 신한촌, 안중근의사 기념비,
블라디보스톡 요새,
독수리전망대
③ 하바롭스크 : 아무르강 전망대, 레닌광장
④ 우스리스크 : 이상설 의사 기념비

 

추운 날씨, 공산주의 체제의 어두움이 아직도 진하게 남아 있을 것 같은 나라,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러시아를 다녀왔다. 동대신문사는 항일유적지 탐방의 일환으로 러시아의 동남쪽에 위치한 극동 지방을 탐방하고 왔다. 5박 6일로 이뤄진 이번 일정은 블라디보스톡, 하바롭스크를 거쳐 우스리스크로 이어졌다.

속초에서 자루비노항으로 가는 배를 타고 18시간 동안의 여정으로 도착한 러시아의 첫 느낌은 제법 쌀쌀한 바람과 함께 다소 무거운 느낌이었다. 어두운 건물톤과 제복을 입은 굳은 군인의 표정에서 아직은 사회주의의 폐쇄적인 느낌이 그대로 묻어나는듯 했다.

자루비노 항구에서 구불구불한 길을 4시간여 간 후에야 우리의 첫 목적지인 블라디보스톡에 도착 할 수 있었다. 블라디보스톡은 아무르만을 따라 시원하게 뻗은 해안가가 아름다운 항구 도시였다. 또한 이곳은 신한촌, 안중근 의사비, 세계 최고 규모의 한국학 대학 등으로 우리나라와 인연이 깊은 곳이기도 하다.

 

우리가 먼저 들른 곳은 일제 강점기에 우리 민족의 집단 거주지인 신한촌이었다. 일제 강점기 초기에 항일 민족지사들의 독립운동 중추기지로 발전했다는 이곳은 세 개의 탑과 그 위에 놓여진 꽃다발만이 그 옛날을 떠올리게 했다.

신한촌을 뒤로하고 우리는 안중근의사 기념비와 블라디보스톡 요새를 거쳐 독수리 전망대에 도착했다. 산의 높이는 그리 높지 않았지만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여 한폭의 그림을 우리에게 선사했다. 여기서 신기했던 것은 결혼식 웨딩촬영과 피로연이 이뤄졌다는 점이다. 전망대에서 샴페인을 터뜨리고 친구들과 결혼을 축하하는 모습은 우리 나라 결혼식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독수리 전망대에서 내려와 우리는 다음 행선지인 하바롭스크로 가기위해 블라디보스톡 역으로 향했다. 말로만 듣던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게 돼 우리는 괜히 맘이 설랬다. 횡단열차 안은 2층침대 2개로 이뤄진 4인 1실이였는데 침대 사이 공간과 침대칸이 좁고 씻을 공간이 화장실 세면대가 전부라 12시간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기에는 무척 불편했다. 열차 내에서 처음 마주친 사람들과 한칸에서 하룻밤을 지낸다는 것이 낯 선 이방인인 우리에겐 생소했지만 일상적으로 열차를 이용하는 러시아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은 듯 보였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여러 에피소드가 많았는데 2층 침대칸에서 자던 기자 한명이 ‘퍽’소리와 함께 침대에서 굴러 떨어졌다. 아래는 외국인 부부가 자고 있었는데 떨어지면서 난 소리에 놀라 잠에 깼다. 그들은 선뜻 자리를 바꿔주겠다고 말하며 1층에서 자라고 했지만 그 기자는 괜찮다고 했다고. 인종과 나라는 달라도 사람간에 오가는 ‘정’은 어떤 나라든지 비슷한가 보다.

이러한 해프닝 속에서 우린 여행의 네 번째 아침을 하바롭스크에서 맞이했다. 하바롭스크는 블라디보스톡과 달리 유럽의 느낌이 더 많이 드는 곳으로 고풍스런 유럽풍의 건물들과 높은 그리스식 기둥이 즐비한 곳이었다.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마친 우리는 아무르강 전망대로 갔다. 하바롭스크에서 오호츠크해 까지 뻗어있는 광대한 아무르강의 옛이름은 ‘흑룡강’이라고 한다. 드라마 주몽에도 자주 등장했던 이 곳은 고구려의 역사적 무대였던 곳으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곳이다.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과 해변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러시아 사람들 속에서 옛 고구려의 흔적은 찾아 볼 수도 없는 이곳이 괜히 아쉬웠다.

러시아는 유독 전쟁에 관련된 유적지가 많았는데 크고 작은 전쟁과 혁명이 많이 일어났음을 암시해 주고 있었다. 러일 전쟁기간 동안 제대로 구축된 블라디보스톡의 요새, 전쟁박물관 등이 그랬다. 하바롭스크에는 2차 대전에 전사한 군인과 소비에트 영웅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명예광장’이 있었는데 거대한 기념비와 그 앞에 꺼지지 않는 불꽃에숙연한 마음이 들어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다음 행선지인 우스리스크까지도 횡단열차를 타고 이동했다. 빡빡한 일정과 횡단열차의 열악한 세면시설로 인해 제대로 씻지 못한 다른 학생 기자들은 힘들어 했다. 이런 와중에 생활력 강한 일부 기자들은 기차안에서 나눠준 컵으로 물을 받아 머리를 감았고, 나는 그 컵으로 머리도 감고 샤워까지 했다. 러시아 여행 중에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탈 계획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열차 안에선 씻기 힘들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우스리스크에 도착하자마자 우리가 들른 곳은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참석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독립운동가, 이상설 의사 유허지였다. 이상설 의사 유허지 방문은 고종이 헤이그 특사를 파견한지 100년을 맞이하는 해라 더욱 의미가 깊었다. 하지만 무성하게 엉킨 잡초더미 속에 덩그라니 놓여있는 기념비는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가는 독립운동가의 애한과도 닮아 애잔함을 더했다.

우스리스크는 러시아 사람들에게 ‘까레이스키’로 불리는 고려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소수민족들과 함께 가혹한 분리·차별정책에 휘말려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었다고 한다. 탐방 중에 마주친 고려인들은 우리말을 익숙하게 잘했지만 러시아 현지 문화에 많이 융화된 모습이었다.

우스리스크를 마지막으로 우리는 탐방의 종지부를 찍었다. 이번 탐방을 통해 나는 ‘러시아라는 베일에 쌓여 있는 나라는 우리 민족의 눈물의 역사와 역사적 아쉬움을 간직한 곳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 이송이 기자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