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국가발전에서의 교육의 역할 분석’ 연구에 의하면 산업화 단계에서는 국민 기초 학습 성취에 초점을 둔 초중등교육이 국가 경쟁력제고에 큰 기여를 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한국사회는 서구 선진국에 비해 늦게 시작하여 단기간에 축약적으로 진행된 산업화의 부작용에 시달려야 했다. 산업화의 열매로 OECD에 가입하는 쾌거를 거두자마자 IMF관리 사태를 겪으면서 탈산업사회화, 정보화, 세계화의 거센 물결 속에서 지식과 기술을 창출하고 활용할 창의적 인재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되었고, 지식과 기술 변화 주기가 급속히 빨라지면서 지식과 기술의 창출 메카로서의 대학의 역할과 경쟁력 강화가 중차대한 국가 과제로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자율과 책임 바탕한 대학정책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는 국민의 정부 정책기조에 힘입어 산업구조의 고도화 발판이 구비되기 시작했으며, 현 정부 들어 고부가가치 지식산업으로의 이행을 촉진하고자 고등교육 경쟁력 강화 방안을 수립하고 대학혁신정책의 비중을 높이고 있다. 특히 대학 자율역량 강화를 기반으로 경쟁력 있는 대학을 육성하고자 대학에 대한 규제를 완화내지 철폐하고, 자율성과 책무성을 확대하는 한편, 대학지원정책을 획기적으로 전환하여 대학의 유형 및 특성에 기초한 정책을 추진하고, ‘선택과 집중’에 의한 투자를 확대하고자 하였다.

이렇듯 자율과 책무에 바탕을 둔 대학혁신정책이 추진되면서 대학과 정부간 정책 방안과 추진방식을 놓고 서로 다른 정책체감으로 갈등과 불만이 불거져 나오고 있다. 우선적으로 정부당국에서는 최근 10여년간 규제완화위원회를 가동하고 규제일몰제를 시행하는 등 최소한의 규제를 제외하고는 대학 운영의 대부분이 대학 자율에 맡겨져 있다고 하는 반면, 대학에서는 취약한 자율성이 대학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주범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자율이 대학에 내려갔다고 하는데 대학에서는 이러한 자율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배달사고가 발생한 셈이다.

특히 ‘새로운 개념의 우수학생’을 ‘입시’가 아닌 ‘전형’의 마인드로 선발하도록 입학프로그램의 개혁을 지향하는 ‘2002년 새대입제도’가 시행되면서 대학입학 관련 ‘3불정책’이 대학과 정부간 자율과 규제 공방의 핵심에 놓이게 되었다. 입학전형에서 ‘기여입학제, 고교등급제, 주지교과 중심의 대학별 본고사’만 빼고 다른 것은 다 자율이라는 게 정부의 입장이고, 이들을 제외한 자율은 의미가 없다는 게 대학의 입장이다.

대학제도 범위의 명시 필요

문제는 익숙한 관행과 결별하지 못한 대학과 정부 모두에게 있다. 정책입안과 시행과정에서는 분명한 정책철학과 원칙이 공유되어야 하고, 정책이해당사자의 수용영역이 점검되어야 한다. 즉 대학운영주체(사립대학, 국공립대학)에 따라 어떤 정책원칙이 적용되어야 할 것인지, 현재 고등학교제도의 운영과 전형 원칙의 적합성이 있는지 등등에 따라 자율과 책무의 내용과 범위가 명시적이어야 할 것이다. 기여입학제는 교육부 단독으로 허용여부를 결정할 영역이 아니므로 월권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기여입학제 허용으로 해석되지 않길 바라며, 사회의 인식과 문화변화에 따라 논의되어 결정할 영역이라는 것이다. 고교등급제는 현행 고교평준화제도가 시행되는 한 평준화체제하에 있는 고교를 등급화할 수는 없다. 다만 다양한 특수목적 고교가 운영되는 만큼 다양한 전형방법을 통하여 얼마든지 전공적성이 있는 학생을 선발하는 입학프로그램을 구안할 수 있다.

문제는 ‘새로운 개념의 우수학생’에 대한 치열한 고민없이 고등학교의 이름값에 비중을 두겠다고하는 것이다. 또한 실체도 없는 본고사를 두고 본고사여부를 판가름해주겠다고 나서는 정부도 문제고 시험위주 입시 관행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신입생들의 입학성적만을 우수대학의 기준으로 여기는 고정관념에 빠진 대학도 문제다.

자율과 책무를 다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3불정책이 대학발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일 것인지 정부와 대학 모두 치열한 반성적 사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관행과 결별하지 못하면 자율도 창의적으로 활용할 수 없고, 점검행정에 연연하면 규제의 탈을 쓴 애물단지 자율이 될 수밖에 없다.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