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겨울
눈 내리는 들판은 더
넓어지고 있을 것이다.
빈 들에 사무치는 아우성으로
바람소리는 파랗게
날이 서고 있을 것이다.

목숨이란 어차피
천벌인 것을
백성들이 갈수록
천해진다 쿨룩거리며
사랑채는 겨울밤이 더
길어질 것이다.

대처로 떠나 잘된 이들도
갈수록 천해져서 떠돌고
이 겨울 고향 강물은
더 깊어지고 있을 것이다.


눈이 내리면 들판은 더욱 넓어진다.
빈들에 사무치는 아우성으로 날을 세우는 것이 바람 소리만은 아니다.
갑오년 동학 난리 때에 맞아 죽은 할아버지들, 일제의 수탈에 항거하다가 맞아 죽은 아버지들, 6·25 전쟁 때에 아무 죄도 없이 끌려가 총질당하여 죽은 삼촌들, 친일파 세력, 쿠데타 세력들에게 돌을 좀 던졌기로 기관총질을 해대는 바람에 죽은 조카들의 울음소리도 함께 섞여 있을 것이다.
어차피 이 땅에서 백성의 목숨은 천벌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 땅이 아직도 끝없는 겨울의 굴레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살아남은 자들도 세월이 흐를수록 천박해지고, 그들이 한겨울의 온기를 모아놓은 ‘사랑채’는 더 긴긴 겨울밤 속으로 빨려들어 가라앉는다. 사계절 겨울인 고향이 싫어 떠난 이들도 추위의 형벌에서 아주 벗어나지 못한다.
혹 겉모습은 나아 보일지 모르나 그들 역시 형벌을 사는 데는 예외가 아니어서, 흐르는 세월과 함께 떠돌며 천박해진다.
이 긴긴 겨울을 조금씩이나마 과거 쪽으로 밀어 보내야 할 고향 강물은 정작 깊은 물속에 멈추어 깊어지고 만다.
혹독한 추위와 매서운 바람을 이겨내고 당당히 새봄을 맞이할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소통이 가능한 쉬운 시를 옛날 시로 치부해버리는 요즘 상황에도 흔들림 없이 이야기 시의 한 장르를 열어가는 시인의 노력이 돋보인다.
정 양(1942~) 시인의 백석 문학상 수상을 축하드린다.

강 상 윤
시인, 동국문학인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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