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 시장으로 뽀뿌링을 사러 나갔습니다, 엄마의 청과 내음 나는 뽀뿌링
그 빛깔이 워낙 화사해서요, 외면하고 한참이나 울었습니다.
겨울 잠옷을 사려던 참이었는데요, 만지면 그 흰 빛깔이 꼭 때 묻을까 하여 그 애 등에 업혀서 돌아왔습니다.
흔들리는 기차 안은 종이배와 빙하시대가 빛을 뿜으며 가지런한데요.
상치 내음새 나는 그 뽀뿌링을 서로 포개 먹으며 우린 한참이나 웃었습니다.
엄마, 이쁜 브로우치를 가슴에 달아드릴까요.

- ‘願往生 願往生 열두 章’其 一

김강태(1950-2003)가 펼쳐놓는 시의 좌판은 대부분 ‘날것’으로 그득했다. 거기엔 밭에서 막 뽑아온 남새의 싱그러움이거나 지금 막 고깃배에서 부려진 활어의 생동감이 있었다. 하여, 그의 단골들은 김강태가 지켜내는 언어의 선도(鮮度)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곤 했다. 어떤 이는 그의 물건에서 새벽의 풀내음을 맡는다 했고, 어떤 이는 비 오는 날의 비릿한 공기를 느낀다고 했다.
시의 상인 김강태는 어떤 물건이건 직접 떼어다 파는 것을 원칙으로 아는 사람이었다. 당연히, 길 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좀 더 나은 ‘시어’를 붙잡기 위해서라면 인천바다 목포바다를 가리지 않았다. 시의 낚싯대를 들고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가 한동안 보이지 않으면 모두가 궁금해 했다. 이번엔 무엇을 잡아오려나? 그 튼실한 언어의 그물에는 어떤 대어가 올라오려나? 그렇게 목을 빼고 기다리는 손님들을, 그는 배반하지 않았다. 특유의 해맑은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새로운 시를 들고 나타났다. 바닷물이 뚝뚝 떨어지는 시, 은빛 비늘을 반짝이며 퍼덕이는 시를 보여주었다. 대개 화요일이었다. 학교신문이 나오는 날이었다. 이 작품도 ‘동대신문’에 처음 소개된 시였다. 그의 국문과 3학년 시절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요즘은 통 그를 볼 수 없다. 자취를 감춘 지 퍽 오래되었는데도 나타나지 않는다. 좀 더 먼 곳으로 물건을 떼러 간 모양이다. 동대문 시장에서 ‘뽀뿌링(포플린, poplin)’을 고르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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