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고깃배를 빌려 타고 섬을 돈다.
야생의 염소떼가 정말 벼랑 끝에 몰려 있다.
초록의 무성영화 같은 움직임이
그런 비밀의 시간이 아득한 데서 가물가물거린다.
저 디딜 수 없는 고요가 염소들의 밥이겠다.
대체 마음의 어디를 풀어 고삐 없는 것이며
또한 어떻게 제 눈썹 위로 올라가는 길을 찾아냈을까
섬에 도착하면 또 섬이 없다.
야생의 염소들만이 그 섬에 가 있다.

- 시집 ‘동강의 높은 새 ’
(세계사, 2000년)에서

문인수(1945~) 시인은 종종 길 위에 있고 풍경 속에 앉아 있다.
마음이 먼저 길을 떠나 몸을 이끄는 천상 길의 시인이다. 관광을 위해, 볼 일을 위해 길 떠나는 일은 드물지만, 시인은 그러나 걸핏하면 길을 떠난다.
어느 날 길 위의 시인은 작은 고깃배를 빌려 타고 섬 주위를 돈다. 길이 끝나가는 지점에 섬이 있고, 섬은 자신을 빙 둘러 길을 낸다. 먼 길 한 개의 소실점으로 사라지지 않기 위하여, 섬은 수평의 둥근 길을 수없이 만들어 낸다. 그리고 섬은 야생의 염소 떼를 기른다. 염소 떼를 정말 수직의 벼랑 끝으로 올려, 풀이 아니라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고요의 밥을 먹이면서 기른다. 한 점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 않으려는 섬의 안간힘이다.
욕심 없는 욕심(고삐 없는 염소 떼들)을 발하여 섬을 지켜내려 한다. 야생의 염소 떼들도 섬의 마음을 깨달아 고삐 없이도 잘 길러지고, 제 눈썹 위로 올라가는 길도 잘 찾아낸다. 시인이 섬에 도착하면 섬은 없어지고, 시인이 섬이 된다. 시인은 섬의 마음으로 야생의 염소 떼를 기른다. 아니 고삐 없는 염소 떼들이 섬을 기르고 시인을 기른다.
결국 우리가 그토록 신봉하는 고삐나 시끄러움의 형식적 잣대로는 그 섬에 갈 수가 없다. 없는 마음의 마음빗장을 풀어 야생의 염소가 되지 않고서는 그 섬에 갈 수가 없는 것이다. 때로는 단조로운 듯하면서 촌철살인의 간결성을 드러내는 표현과 풍부한 서정은 김종삼이나 박용래의 맥을 이을 만한 정통 서정 시인이라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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