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묶여 있는 것은
짐승이 아니다
거기 숨죽이고 있는 것은
짐승이 아니다
그러나 주인은
짐승이라고 한다
한 마리 순한 짐승이라고 한다
아, 네 발로 벌떡 일어나
짐승이여 그대는 무엇을 그리워하는가
무엇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가
거기 쓰러져 있는 것은
짐승이 아니다
거기 묻혀 있는 것은
말 못하는 짐승이 아니다.


-시집 ‘봄의 소리’
(창작과 비평사, 1981)에서

동국문학을 떠받쳐온 기둥의 하나는 부정(否定)의 정신이다. 그것은 저 ‘만해’의 시에서 읽히는 완곡한 희망의 어법이면서, ‘신경림’의 시편들에 보이는 묵묵한 저항의 문법이다. 그런 점에서 동악의 시인들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어조는 진부한 참여시의 그것과 분명히 구별된다. 그것은 세상의 환영(幻影)과 시간의 질곡(桎梏)에 점잖게 그러나 준엄하게 대응하는 싸움의 방식이다. 아무리 엄혹한 현실과 정면으로 맞서더라도 시인은 투사이기 이전에 가객이어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었을까. 김창범(金昌範;1947-)의 시들은 튼실한 노래가 된다. 시인 스스로가 밝히고 있듯이, 대개는‘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는 것들’을 위한 노래다. ‘쉽게 포기하게 하고 외면하게 하는 것들’을 위한 노래다. 무엇보다 ‘힘없는 이웃’을 위한 노래다.
꽃과 나무와 새, 달과 석류 따위 지극히 서정적인 제재에서 치열한 싸움의 논리와 실존적 의미를 함께 읽어내는 그의 안목은 아무 시인에게서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봄의 소리를 그리며 “생각해서야 깨달아지는 것이 아니다/ 고함쳐야 들리는 것은 더욱 아니다”라고 말하는 시인, 김창범. 그렇게 잔잔하면서도 뜨거운 정신의 파고(波高)를 만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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