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묻은 칫솔의 흰 거품과도 같은 파도가 부서진다.
모래톱의 이랑마다 줄지어 새겨지는 문장들.
‘도피의 헛꿈은 헛꿈일 뿐이다’
‘함께 사라지지 않는 망각은 망각이 아니다’
‘겉도는 몸짓은 위선이다. 위선이다’
죽은 천상병이 파도마다 일어나 섬찟섬찟 웃으며
우리의 모든 거짓을 손가락질하고 있는 바닷가에서
나의 허망한 그림자도 은박지처럼 구겨진다.
버석거리는 모래에 나를 밟고 돌아간다.
버리지 않고 버리는 꿈, 나누지 않고 나누는 사랑.
그들의 그림자를 내가 벗으며, 파도뿐인 동해에서
천상병 없는 서울의 없는 파도를 떠올린다.
- 시집‘ 활주로가 있는 밤’(1999년 문학동네)에서

햇빛이 은지처럼 깔린 동해 바닷가에서, 촌락의 아이들이 그림자를 뿌리치며 달려간 후, 시인도 걸어간다. 빈손뿐인 동해에서 마종하 시인은 천상병을 떠올린다. 그의 거짓 없는 천진성 때문에 시를 쓰지 않아도 시인인 사람이라고 그는 생각하는 모양이다. 동시에 시인은 서울을 떠올린다. 파도가 부서지는 동해는 순수의 세계이고, 서울은 거짓의 공간으로 구분된다. 시인은 거짓의 공간에서 탈출하여 순수의 세계에 머물고자 한다.
그러나 거짓에서 도피하려는 것은 헛꿈에 불과하며, 거짓 속에 ‘열외’를 자처하는 것도 위선이기 때문에, 거짓을 벗어나려면 단순한 망각이 아니라 거짓과 함께 소멸해야 한다고 노래한다. 순수의 표상인 죽은 천상병이 우리의 모든 거짓을 손가락질하며 우리를 밟고 돌아간다. 모든 거짓과 위선의 그림자를 벗고 정직한 나로 돌아가기 위한 단련의 과정을 거쳐 ‘버리지 않고 버리는 꿈, 나누지 않고 나누는 사랑’을 꿈꾼다. 선종에서 사용되는 의미처럼 일체의 행위에 있어 물고기가 물속을 가듯이, 새가 창공을 날듯이 걸림이 없는 행동, 무위를 꿈꾼다. 하지만 파도뿐인 동해에서 천상병 없는 서울의 없는 파도를 떠올리며 참담해 한다. 다시 허위와 위선에 찬 현실로 돌아갈 것을 비극적으로 응시하고 있다. 마종하 시인을 흔히 ‘시인을 벗고 시를 껴안은 시인’이라고도 하고, 가장 진솔한 삶에 대한 희망 때문에 현실적 고통을 자초하기도 한, 눈물겨운 파란의 시인이라고도 한다. 동국문학의 바다에 훌륭한 시인이 한둘이 아니겠지만, 이와 같은 시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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