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탕에 덤프트럭 바퀴 자국이 선명하다.
가라앉은 진흙탕 물을 헝클어뜨린 바퀴 자국 선명하다.
바퀴 자국 위에 바퀴 자국.
어디로든 가기 위해
남이 남긴 흔적을 지워야 한다.
다시 흔적을 남겨야 한다.
물컹한 진흙탕을 짓이기고 지나간
바퀴 자국, 진흙탕을 보는 사람 뇌리에
바퀴 자국이 새겨진다.
하늘도 구름도 산 그림자도
바퀴 자국을 갖는다.
진흙탕 물이 빠져 더욱
선명한 바퀴 자국.
끈적거리는 진흙탕 바퀴 자국.
어디론가 가고 있는 바퀴 자국.

시집 ‘꽃 막대기와 꽃뱀과 소녀와’에서

절제된 이미지의 선명함이 돋보이는 작품이네요. 이 윤학 시인의 다른 작품에서 보아 왔듯이, 사소한 일상의 것들(저수지, 도마, 목이 잘린 뱀, 폐비닐, 무당벌레 등)을 선명하게 이미지화함으로써 충격을 주고 있네요.
이미지를 상처화하고, 상처를 이미지화하는 천부적인 재능의 시인이라고 생각되네요.
흔히 시인은 보이는 것을 가지고 보이지 않는 것을 일깨워주는 존재라고들 하지요.
남들이 볼 수 없는 것을 시인은 잘도 보아내고, 남들이 아프지 않는 것도 아프다고 호소하는 존재니까요.
그러나 이 윤학 시인만큼 고통을 잘 견뎌내고, 고통을 적극적으로 치유하려는 시인도 드물 것 같습니다. 진흙탕에 찍힌 바퀴 자국을 바라보는 시인의 뇌리에 바퀴 자국이 새겨지고, 하늘도 구름도 산 그림자에도 바퀴 자국이 새겨진다는 상상력의 증폭됨을 읽을 수가 있네요. 고통의 증폭됨을 느낄 수가 있네요.
시인의 다른 작품에서라면 흔히 상처의 이미지로 읽어낼 만도 한데,
이 작품에서는 그저 담담하게 현상만 그려내 보여주고 있군요.
절제된 이미지의 한 단면이 아닐런지요.
절제된 상처의 한 단면이 아닐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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