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1일은 새롭게 지역 살림을 맡아나갈 자치단체장과 의원들을 선출하는 날이다.
1961년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군사정권이 정지시켰던 지방자치제가 87년 민주화운동 이후 주요한 민주화 조치로 부활되어 1995년 광역 및 기초 지방자치단체장과 광역 및 기초 지방의회 의원을 선출한 이래 벌써 10년이 지났다.
그러나 지방선거를 둘러싼 현 상황은 새로운 지역일꾼에 대한 관심과 기대보다는 실망과 우려가 더 큰 것이 사실이다. 지난 10여 년간 뇌물수수와 선거법,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기소된 지방자치단체장은 161명에 달하며, 서울시의회 의원의 경우 재정경제위원회나, 도시관리위원회, 건설위원회, 예결산위원회의 절반 이상이 상임위 업무와 관련된 영리행위를 하고 있다. 이미 10여 년간 답습해온 지방행정을 둘러싼 고질적인 부패와, 주민자치라 하기엔 어색하기 짝이 없는 행정일변도 관주도의 지방자치는 변화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자치’없는 지방자치 10년

여기에 특정정당의 ‘공천’이 곧 당선과 진배없는 일부 지역의 싹쓸이현상은 공천헌금과 같은 비리와 잡음으로 드러나고 있기도 하다. 더욱이 이번 선거는 ‘투표함의 뚜껑을 열어보나마나’라는 식의 분위기가 더해져 지방선거가 민주주의의 축제요, 지역사회의 미래를 설계하는 공론의 장이 아니라 유권자들의 냉소와 무관심 속에 주요 정당들 간의 이전투구의 장으로 변질된 듯하여 우려스럽기 짝이 없다.
더구나 얼마 전 발생한 야당 대표에 대한 상해 사건을 두고, 선거에서의 이해득실을 따져 정치적 사건으로 몰아가려는 분위기까지 더해지며, 한 주요 후보는 유세 도중 ‘대표님 고맙습니다!’고 구호를 외치는 웃지 못할 희극마저 벌어지는 상황이다. 이 와중에 지방선거를 둘러싸고 가장 열띠게 논의되어야할 지역의 의제들은 모두 사라지고, 야당 대변인의 ‘당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칼부림을 했다’는 근거 없는 막말과 ‘야당의 싹쓸이만은 막아야 되지 않겠느냐’는 여당 지도부의 읍소가 지방선거의 최대 쟁점이 되고 있다.
이런 정치권의 행태에 거듭 절망을 느끼고 있는 시민들은 자기 동네에 누가 후보로 나왔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지방선거에 관심이 없는 상황이어서 투표율이 사상 최저를 기록하리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사라져 버린 지역의제들

그럼에도 지역의 대표를 우리의 총의를 모아 뽑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시민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올바른 자치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실제로 시민 삶의 질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환경이나 복지, 문화, 교육 등의 과제는 지방자치단체가 어떤 정책을 가지고 지역을 만들어 가는가에 달려 있다.
중앙 정치가 시민이 참여하기에는 너무 커다란 의제를 다루며 통로도 제한적인 반면, 지방자치는 시민들이 살고 있는 자기 동네의 삶에 대한 문제를 주요한 의제로 하며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통로를 제공하고 있다.
시민이 나서야 할 때

따라서 시민이 얼마나 의식적으로 지방자치에 참여하는가의 수준에 따라 자기 지역의 현재와 미래의 모습을 결정짓게 되는 것이며, 또한 지방자치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도로 하나를 뚫는 것보다 숲을 더 가까이 볼 수 있는 동네를 바라고, 으리으리한 시청청사를 짓기보다는 급식비가 없어 점심을 굶는 아이에게 도시락을 건네기를 원하는 우리의 바람과는 거리가 먼, 건설업자와 땅부자들만 좋은 일 시켜주는 개발사업에만 열을 올리는 오늘의 지방선거의 행태는, 사실 주인인 우리가 돌보지 않은 결과에 다름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지역의 모습을 만들기 위해서는 스스로 주인답게 서는 길밖에 없다.
선거기간이 며칠 남지 않았다. 이번 선거에는 선거연령이 만 19세까지로 확대되었다.
이전까지 모든 면에서 성인의 의무를 감당하면서도 당연한 정치적 권리를 제한받아오던 청년들이 자신의 권리를 당당히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민주사회의 책임 있는 유권자로서 반드시 투표에 참가하여 지역주민 위에 군림하는 구시대적 공직자가 아니라 지역과 주민을 위해 성심성의껏 일할 수 있는 참일꾼을 뽑도록 하자.


조경만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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