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제적인 규모로 열린 대형 공연행사가 잇따라 물의를 일으켜 큰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세계적인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의 첫 내한공연이 공연 이틀 전 갑자기 무산되었고, 지난 5일~9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국립오페라단의 대작(大作) ‘나부코’는 주역가수, 지휘자가 모두 변경된 채 공연에 올랐다.
사실 이번 대형공연의 취소사태는 그리 놀라울 일이 아니다. 지난해 8월에 독일 록밴드 스콜피온스의 내한공연 취소, 9월 ‘카르멘’ 주역가수 3명 출연 취소, 10월 ‘돈 텔 맘마’ 취소, 11월 대형 콘서트 ‘라이브 패스트 2004’가 행사 당일 현장에서 취소돼 한류열풍에 찬물을 끼얹기도 했다.
대형공연의 취소는 공연시장이 상업화, 대형화가 진행되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유독 국내에서만 이런 현상이 자주 벌어지는 사실은 국제적인 망신이 아닐 수가 없다. 모두가 어렵게 이루어낸 문화강국의 이미지가 아닌가.
아시아의 문화 선진국이란 타이틀을 얻기까지 수많은 한류스타들이 아시아를 방문하였고, 수많은 교류 콘서트를 개최하였다. 그러나 몇몇 아마추어 기획사들로 인해 한국은 아무 때나 공연을 취소해도 되는 나라, 부르는 대로 개런티를 주는 나라로 인식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은 공연기획사 전문성의 부재가 가장 중요하다. 최근 국내 공연시장이 급격히 산업화되면서 공연계로 투자자금이 몰리고, 유명 아티스트를 내세운 신생기획사들이 급격히 늘어남에 따라 기획력을 갖추지 못한 기획사가 난립하고 있다.
국내에 전문공연기획자를 양성하는 공신력 있는 기관도 몇 안되고, 대형공연을 유치한 경력을 지닌 기획사도 손에 꼽을 정도니 이들의 전문성을 인정하기보다는, 무조건 비싼 개런티와 로열티를 주고 유명공연을 유치하기만 하면 전문가로 인정되는 공연시장의 과소평가가 팽배하고 있는 것이다. 15%의 로열티를 주고 들여온 ‘오페라의 유령’이 전문성 있는 기획사와 손잡지 않았다면 과연 95%의 객석 점유율을 이뤄낼 수 있었을까?
근본적으로 문제점을 살피자면 외국공연들의 무분별한 수입이 원인이다. 영화에는 스크린쿼터제가 있는데 공연에는 스테이지쿼터제가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훌륭한 공연으로 시장을 넓히고 관객들의 눈높이를 높였다면 이제 국내에서도 그런 공연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이 형성되어야 함에도 규제책 하나 없는 제도적 허술함은 창작공연을 만들기보다는 라이센스공연을 수입하는 게 훨씬 수월하다는 아이러니를 연출하고 있다. 과연 매출액의 28%가 넘는 로열티를 주고 해외 대형뮤지컬을 들여와야만 하는 것인가.
한류를 만들어낸 자랑스런 대한민국이 공연 몇 달 전에 몇 십만 원이 넘는 티켓을 예매 하는 관객의 마음을 진정으로 소중히 생각할 줄 아는 문화정신이 형성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그렇게 형성된 문화적 성숙함이 진정한 문화강국으로 부상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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