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좋든 싫든 맺어지는 게 인연(因緣)이다.‘그리워하는 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수필가 피천득과 아사코의 애틋하고 아름다운 인연이 있는가 하면, 기억하기조차 싫은 악연도 있다.
▲지난 4·30 재·보선으로 정국 구도가 여소야대로 바뀌었다. 이에 열린우리당 정세균 원내대표는 지난 6일 민주당과 우리당의 합당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인연은 악연으로 보인다. 우리당과 민주당은 원래 한 몸이었다.
당시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후보를 당선시켜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으나, 노 대통령은 당선 후 민주당을 탈당했고 대통령을 따르는 의원들 역시 대거 빠져나오면서 양당의 관계는 악연으로 변했다. 또한 우리당 지도부는 총선과정에서 민주당을 ‘퇴출돼야 할 부패한 기득권 정당’이라고 몰아쳤다.
여기에 탄핵풍까지 불어 우리당은 여대야소 정국을 만들었다. 반면에 민주당은 텃밭인 호남마저 우리당에 빼앗겨 소수당으로 전락했다.
▲이들이 이 같은 악연임에도 불구하고 합당해야 하는 명분이 도대체 무엇일까. 원내 과반을 넘기거나 호남지역의 지지를 흡수하겠다는 의도 외에는 눈을 씻고 봐도 당의 정체성이나 비전을 찾아볼 수 없다. 정체성 정비와 큰 정치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수적·지역적 이해에 급급하는 듯한 인상만 풍긴다.
대선 이후 민주당을 버리고 창당한 우리당이 민주당과의 통합을 거론한다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집권정당이면 정체성은 물론 정치행위에 있어서도 대의와 명분이 있어야 한다.
▲소설 속 대부분의 남녀 주인공들은 어떤 시련이 닥치더라도 이겨내고 그 둘의 사랑을 이루고야 만다. 그러나 정치는 현실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민주당은 우리당을 사랑하지 않는다.
이제 겨우 지역주의가 퇴색하고 있고,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 등으로 정책정당의 가능성을 보여준 시점에서 이런 정당들의 발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기존의 정당들이 각자의 색깔을 내면서 지지를 넓혀가는 것이 선진정치로 가는 길이다. 부나비처럼 이합집산하는 정당의 행태는 사라져야 한다.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