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되고 싶은 곰과 범은 동굴 속에 들어가 쑥과 마늘만 먹으면서 버텨야 했다. 100일 동안. 그 100일 동안 햇빛도 보지 말고 근신하며 버티라는 것이다. 범은 결국 뛰쳐나갔고 곰은 견뎠다. 그리하여 곰은 생명을 잉태하는 여자가 되었고 역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태평양에는 주먹만한 구멍이 나 있는 작은 나무토막 하나가 둥둥 떠다니고 있다. 그 바다 밑바닥에서 앞 못 보는 거북이 느릿느릿 헤엄쳐 다니다가 꼭 100년에 한번 수면 위로 올라온다. 그때 주먹만 한 구멍에 거북이 머리를 끼워 맞출 확률은? 셀 수 없이 많은 생명체 중에 사람으로 태어나기란 그보다도 더 낮은 확률이란다.
뱃속 가득 욕심이 들어찬 사람을 보면 “100년도 살지 못할 인간이 천년의 욕심을 부리는구나”라고 꾸짖는다.
산도(産道)를 지나와 태어난 아기가 적어도 100일은 살아줘야 세상을 버틸 만하다 하여 백일잔치를 치러 주었고, 내 자식이 잘 되려면 100일은 기도해야 하기에 어머니들은 절과 교회를 찾아다닌다. ‘백방’으로 뛰어다니고 ‘백약’을 써도 소용이 없으면 그때는 겸손하게 포기의 미덕을 받아들여야 한다.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꽉 찼다. ‘100’이라는 숫자는.
온전한 10이 온전하게 열 번 모였으니 이건 ‘전부’이고 ‘궁극’이다.
석가모니 열반 후 100년이 지나자 우유와 물처럼 화합해 왔던 공동체(승가)가 서서히 갈라지기 시작한다. 분열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대승불교라는 더 크고 완전하고 역동적인 세계를 창출해내었다. 부정하다 여겼던 가치도 대승 속에서는 그 자체로 아름답고 똑똑하였다. 100은 꽉 찼기에 버릴 수도 있는 숫자다. 대승의 동국으로 거듭 날 절호의 기회다.

이미령
역경원 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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