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가지 비유’라는 경전이 있다. 사람이 얼마나 어리석을 수 있는가를 백 개의 풍자(엄밀하게 말하면 98개)로 살짝 비튼 경이다. 이 경을 편찬한 상가세나 스님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이 글을 지으면서 실없이 우스개말을 마구 섞어서 진실한 말을 그르친 것 같지만 이치에 맞는지를 잘 따져보기 바란다. 쓰고 독한 약을 달콤한 꿀에 섞는 것과 같고, 명약(진실)을 나뭇잎(우스개말)에 싼 것과 같다. 달콤한 꿀은 독한 약을 몸에 부담가지 않게 하는 장치이고, 약을 상처에 바른 뒤에 나뭇잎은 버려야 하니 진리를 감싼 실없는 웃음을 잘 헤아려서 진리를 취해야만 하리라.”
위선과 부조리가 바글거리는 세상을 향한 선지식들의 일갈은 입에 쓰다. 성현의 가르침일랑 자다 봉창 두드리는 소리가 되어버린 지 오래이다.
몸에 좋은 약은 왜 그리 입에 써야만 하는 걸까? 입과 목을 넘어갈 때까지 만이라도 달콤하면 좀 안 되는 것일까? 부처님 말씀조차도 저렇게 우스개소리에 포장이 되어야 중생들에게 들어 먹히는 판이다. 그러지 않아도 잘못 돌아가는 세상에 욕지기가 나는데 삼켜야 할 약마저 쓰기만 하다면 돈 없고 배경 없고 권력 없는 우리는 너무 절망적이지 않는가.
고(故) 김형곤-서슬 퍼런 군사정권 시절, 사람들은 그의 세태 풍자 코메디를 보며 맘껏 깔깔 웃어댔다. 세태를 고발하던 이가 그 한 사람 뿐이었을까 마는 부조리한 속에서도 그가 이 시대에 안겨준 선물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심장이 굳어버리고 이성이 마비되어 뭐가 선하고 바른 것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이 세상, 바른 길을 보여주는 성인군자의 말씀에 움찔하는 양심조차 먹통이 되어버린 이 세상을 그는 포기하지 않고 웃음으로 위로하고 풍자로 치유하려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의 웃음이라는 나뭇잎에 싸인 명약을 먹고 그 시절을 버텨오지 않았는가 말이다.

이 미 령
역경원 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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