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수업 시간에 한 학생이 조그만 손거울을 들여다보며 시선을 뗄 줄 모르는 모습을 보며 잠시 단상에 빠진다. 여고에 근무한 지 어느 덧 10여년이 흘렀다. 그새 우리 딸아이도 부쩍 커서 튼 살을 걱정하고 거울을 자주 보는 중3 소녀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건성피부나 아토피 또는 늘어난 뱃살을 주제로 학생들과 얘기하는 것도 별스럽지 않고, 이따금씩은 성형수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그리 어색하지 않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한 번 쯤 자기 용모에 대해 고민해 보지 않았다면 그는 아마도 솔직하지 않은 사람이거나 아니면 팔등신의 꽃미남 꽃미녀 일 것이다.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어떤 여론 조사에서 24.6%는 용모가 직장생활에 조금 영향이 있다고 했고, 46.2%는 매우 큰 영향이 있다고 응답한 반면에 2%만이 전혀 영향이 없다고 응답했다. 구직자들을 대상으로 한 다른 여론조사에서 남자는 9.3% 여자는 22.3%가 성형수술을 했다고 한다. 이처럼 성형이 현실적으로 필요하기도 하고 심리적으로는 자신감 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십분 이해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 지는 건 왜일까.
불교에는 ‘유심소작(有心所作)’ 또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가르침이 있다. 이에 따르면 얼굴을 만드는 것은 자신의 마음과 행동 습관에 달려있는 것이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링컨의 ‘나이 40세가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은 너무도 유명하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사람이 잘사는 것’은 관상이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칭찬과 격려를 받다보니 귀한 행을 하고 부단히 노력함으로써 그 결과 잘살게 되는 것이라고 ‘상론(相論)’에서 역설했다. 즉, 사람의 용모는 내면의 마음과 생활 습관이 밖으로 드러남으로써 스스로 형성해 나가는 것이라는 뜻이다.
‘얼굴’이라는 말의 어원은 ‘얼[정신]의 꼴[모양]’ 혹은 ‘얼[정신]의 굴[동굴=통로]’이라고 한다. 우리말에 ‘꼴값 한다’ 혹은 ‘얼굴 값 좀 하라’는 말이 있는데, 얼굴이 잘났음에도 행실이 그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을 향해 용모와 마음의 상관관계를 상기시켜주는 말이다. 현실적 필요성이나 급한 마음에 우선 성형으로 얼굴을 고치더라도 그에 걸맞은 마음씀씀이와 생활습관으로 얼굴값을 감당한다면 굳이 성형을 탓할 사람이 없으리라.

이 학 주
사범대학부속여고 교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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