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부를 하다보면 가끔 매력적인 말들이 있다. 성불할 수 있다는 표현에서부터 큰 부귀영화를 얻을 수 있다는 격려도 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눈에 띄는 것이 육신통이다. 천안통(天眼通)·천이통(天耳通) 등 여섯가지의 신통력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그 개념이 얼른 머릿속에 잡히지 않는다. 천안, 하늘세계를 보는 눈인데, 그게 과연 무엇일까 하는 의구심이 든 적도 있다. 타심통(他心通)이라는 말은 알아듣겠다.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줄 알면 얼마나 신날까를 상상해 본다. 그런데 아무리 공부를 해도 타심통은커녕 자심통(自心通)도 못했으니 딱한 노릇이다. 우선 신통의 종류가 여섯인 것에 주목해 보자. 불교에서의 여섯이라는 숫자는 흔히 육근(六根), 육경(六境)하는 그 여섯가지의 감각기관을 가리킨다. 또 육신통의 배열이 안·이·비·설·신·의로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육신통은 나의 주관적 감각을 승화(昇華)시킨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불교공부를 하기 전에는 온톤 적개심과 이기심으로 무장했었는데, 불자가 된 이후부터 그 안목과 마음이 달라졌다는 의미이다. 젊었을 때 나는 이 신통력을 손오공처럼 되는 것이라고 착각했다. 하늘을 날고, 축지법을 써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존경을 받겠다고도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러나 신통은 결코 외형적 변화만은 아니다. 내면이 무르익어서 처신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천안의 뜻도 결국 높고, 멀리 보는 안목이라는 뜻이다. ‘화엄경’에는 일중일체(一中一切)라는 범어가 있다. 분석적으로 보면 작은 것들이 모여 전체를 이룬다는 뜻이다. 그러나 직관적으로 해석하면, 미세한 하나하나에도 전체를 관통하는 그 무엇이 있다는 의미이다. 요즘 개혁이라는 말이 전가의 보도처럼 쓰이고 있다. 그러나 개혁이란 법을 뜯어 고치고 구조조정을 해서 인력을 감축하는 것으로서는 결코 성사될수 없다. 신통력으로 자신을 바꿔 가는 사람들만이 개혁을 이룰 수 있는 법이다.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