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 인해 함께 활동하던 후배들과 가족까지 피해를 입어야 할 때가 가장 힘들었다.”
한창 월드컵 열기로 온 국민의 함성이 높아가던 2002년 여름. 한 학생 대표자는 ‘수배자’라는 굴레를 안은 채 학교 안에서 숨죽여야 했다. 98년, 한국대학생총학생회연합(이하 한총련)이 이적 단체로 규정된 이후 한총련 소속 대학의 단과대 학생회장, 혹은 총학생회장과 부총학생회장은 모두 수배자라는 낙인이 찍히게 된다.
당시 경영대 학생회장으로 당선된 유영빈 동문 역시 이 같은 역사의 굴레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활동의 폭이 학교 안으로 한정돼 있는 만큼 사소한 일까지 내 손으로 직접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로 인해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도 많은 활동을 하지 못했던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실제로 유 동문은 경영대 학생회장을 거쳐 2003년에는 우리학교 총학생회장으로 활동했다. 때문에 수배 생활로 자유롭게 학생들을 위한 활동을 하지 못했던 시간들이 졸업을 한 지금에도 가슴에 크게 남아 있다고 한다.
“요즘은 학생운동이 소수 학생들만의 활동이 된 것 같아 새로운 변화를 모색해야 될 때가 온 것으로 보인다.” 학교에 갓 입학해 참여한 집회 현장에서 함께 시위에 참가했던 한 학생이 진압에 목숨을 잃는 현장을 목격한 후 본격적으로 학생회 활동과 학생운동에 뛰어들게 됐다는 유영빈 동문. 현재의 대중적 지지를 받지 못하는 학생운동이 사회적인 담론 이외에도 요즘 학생들이 고민하는 학업, 취업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열린 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그런 그가 지난 8월 15일 광복절과 너무나 잘 맞아떨어지게도 ‘자유의 몸’이 되었다. 이번 해 광복절 특사로 수배가 해제돼 4년간 그의 몸과 열정을 감싸고 있던 굴레를 벗어던지게 된 것이다.
“아직까지도 정신이 없다. 학교 안에만 있다가 바깥세상으로 나오니 모든 것이 새롭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축하인사를 건네곤 해서 여전히 좀 얼떨떨한 것이 사실이다.” 학교 안에서 생활했던 시간이 컸던 만큼, 학교와 학생들을 위한 마음이 컸던 만큼 유난히도 그의 수배 해제를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주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하지만 그가 ‘자유’를 얻은 해방감에 기뻐만 하고 있기에는 해야 할, 그리고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 많다. 사회적으로 약자에 위치해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한 사회활동을 하고자 하는 그에게 앞으로 배우고 부딪쳐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바쁘게 부당한 사회 한 가운데서 ‘삐딱한’ 시선을 보내고 있을 그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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