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묻지 않은 소박함이 아름다운 곳

우리학교 소비자 생활협동조합(이하 생협)이 주최한 ‘베트남 생활 문화유적 답사’가 지난 6월 21일부터 5일간 진행됐다.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와 호치민 박물관, 하롱베이 등을 중심으로 진행된 이번 답사에는 교수 3명, 생협직원 및 교직원 9명, 대학원생 2명, 학부생 10명 등 총 24명이 참여했다.
편집자


비행기 문을 나서자마자 후텁지근한 바람이 온 몸을 에워싼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로 5시간이면 갈 수 있는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 그곳에는 없는 것이 많다.

우선 산이 없다. 오래 전부터 형성돼온 삼각지이기 때문에 강한 햇빛 외에 시선을 가로 막는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강한 자외선을 차단해 줄 산이 없어 알 부화율이 낮으며, 일하는 남자 역시 찾아볼 수 없다. 이는 베트남이 철저한 모계중심사회이기 때문이다.

자연에서 여유를 즐기는 ‘물’의 사람들

중국을 기준으로 ‘편안한 남쪽’이라 불리는 하노이는 홍강으로 둘러싸여 강의 안쪽이란 지명의 유래를 갖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이곳에서는 유난히도 ‘물’의 매력을 많이 느낄 수 있다.

가장 처음 하노이 물의 매력을 알게 해준 ‘땀꼽’. 땀꼽은 난빈 호아루에서 배를 타고 1시간 정도 가면 볼 수 있는 동굴이다. 방금 깎은 연필처럼 가파르게 솟은 산들 사이로 물이 깊게 드리워져 있다. 물은 마치 윤활유 역할을 하듯 자칫 삭막해 보일 수 있는 거친 바위산들과 그렇게 절묘한 조화를 이룰 수 없다.

이 동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한가로이 배를 젓는 뱃사공의 모습이다. 대나무를 모아 만든 삼판대 위에서 의연한 자태로 노를 젓는 사공의 모습을 보면 이들이 정말 물과 가깝게 살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높게 자란 물풀을 가로 지르며 떠가는 배에 앉아 있노라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하지만 1시간가량을 그늘 하나 없는 배 안에서 보내는 동안 일행들은 하나, 둘 지루하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그런 우리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뱃사공은 몽우리가 채 열지 않은 연꽃으로 ‘연꽃목걸이’를 만들어 주며 환하게 웃는다. 순간 빠름이라는 현대 문명에 싸여 느림이 주는 미학을 잊고 산 듯한 내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들의 삶의 ‘여유’는 상인들의 모습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호안끼엠호수 옆에 위치한 36거리는 하노이 최대 번화가이다. 서로 다른 종류의 물건을 판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이곳은 언뜻 우리네 남대문과 비슷해 보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손님이 와도 멀찌감치 지켜보기만 하는 그들은 ‘호객행위’를 하지 않는다. “아직 서비스의 개념이 발달하지 않은 것 같다”는 한 참가자의 말처럼 이 곳 베트남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볼 수 있는 치열한 서비스 경쟁의 현장을 쉽게 발견할 수 없다.

땀꼽에서 느낀 여유로움이 자연과 함께하는 베트남 사회를 보여주었다면, 수상인형극은 물을 활용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강물이 넘친 논이나 강, 호수에서 유래한 놀이라고 한다. 아마도 우리의 탈춤놀이와 비슷한 맥락이 아니었을까. 농사를 짓고 고기를 잡는 농부들의 생활상을 그린 인형극은 악사들의 노래 소리와 어우러져 맛깔나게 표현된다. “배우들은 인간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일년 내내 하루도 쉬지 않고 공연연습을 해 상체에 비해 하체가 굵다”는 현지 관계자의 말을 들으며 베트남에서 수상인형극은 전통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생활에 벤 전쟁의 아픔 넘어 미래로

이렇게 우리네 7, 80년대와 다를 것 없는 문화를 안고 사는 듯 해보이지만,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이다. 이를 단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곳이 호치민 묘이다. 광장으로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웅장하리만큼 거대한 구조물은 호치민이 베트남 국민에게 어떠한 존재인지를 실감하게 한다.

러시아의 레닌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방부 처리 된 채 보존되고 있는 호치민의 시신. 이를 보기 위해 들어가는 길에 일행 모두는 그 엄숙함과 경건함에 말을 잇지 못한다. 후텁지근한 바깥과의 온도 차이와 함께 두 손을 모으고 조용히 누워있는 새하얀 얼굴의 호치민 시신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뤄 오싹함 마저 들게 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베트남에는 모든 풍경들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영화 인도차이나의 배경이 되기도 한 하롱베이는 많은 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도저히 섬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이다. 선실을 나와 뱃머리에 기대어 점점 다가오는 하롱베이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의 신비함에 빨려들 것만 같다. 티토프 섬 전망대에 올라보니 크고 가파르게만 보였던 하롱베이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첩첩히 쌓인 바위산들을 보자 베트남을 침략한 몽골군이 이곳에서 크게 격침당했다는 전설이 떠올랐다. 아름다워 보이기만한 이곳도 베트남 전쟁의 아픈 기억이 깃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밀려온다.

유난히도 베트남에서는 치아가 검은 할머니의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짜오까이라는 열매를 먹어서라고 한다. 짜오까이는 전쟁 중 겁탈을 방지하기 위해 여자들에게 먹인 열매이다. 새삼 이번 여행 중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베트남 전쟁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다. 실제로 한국전쟁의 주요 무대였던 중부지방과는 달리 우리가 여행한 북부의 하노이에서는 전쟁의 흔적을 쉽게 찾아볼 수 없다.

베트남하면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은 ‘베트남전쟁’을 생각한다. 이번 여행에서도 일행 대부분의 첫 질문은 “베트남 사람은 우리를 생각하나요?”였으니 말이다. 지난 세월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던 베트남 전쟁. ‘짜오까이’라 불리는 할머니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네 위안부 할머니가 떠올라 그 때의 아픔이 가슴 깊이 전해져온다. 하지만 이제 베트남은, 그리고 우리는 전쟁의 상흔을 잊고 미래를 향해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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