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편지

지숙아! 이제는 어엿한 선생님이 되었으니 호칭을 달리 해야 하는데, 이름이 먼저 튀어나오는구먼. 그동안 잘 지냈는지? 아직까지 바람이 쌀쌀맞지만, 동악의 곳곳을 누비고 다니는 새내기들의 씩씩한 발걸음과 쾌활한 웃음소리에 동장군은 벌써 기지개를 활짝 펴고 있다네. 이제 강의실에 모여들 헌내기(?)들이 제각기 그동안 쌓였던 무용담을 풀어놓을 때가 되면, 동악은 봄내음으로 진동하겠지.
4년 전 우리들의 첫 만남이었던 역사학개론 시간이 생각나는구먼. 나도 부임 후 첫 강의였고, 00학번도 처음 접하는 전공강의였던 탓에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어. 월요일 오전 8시 반에 시작하느라 모두들 눈가에 잠이 주렁주렁 매달렸다가 체육관 주변을 뜀박질하는 농구선수들 기합 소리에 이내 정신을 바싹 차렸고,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으며,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던 날 야외수업 핑계로 남산에 올라가서 이야기꽃을 피웠었지.
박지숙 하면 무엇보다 경주 답사 때 태종 무열왕릉비에서 아무런 원고 없이 당차게 설명하던 모습과 방학을 맞이해서 당시 막 완간되었던 50여 권의 한국사 책을 독파하겠다고 다짐하던 일이 떠오른다네. 역사를 폭넓게 공부하겠다고 함께 일본책을 강독했던 일, 그리고 금강산으로 수학여행을 가서 아름다운 경치에 취하기도 하고 북한 안내원들과 정담을 나누면서 뜨거운 민족애를 느꼈던 추억도 잊을 수가 없다네.
이처럼 동악은 우리의 인연이 맺어졌고 소중한 삶의 추억과 역사가 아로새겨진 마음의 고향인 셈이네. 네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언제든지 마음 속에 떠올리고 찾아올 수 있는 포근한 고향을 만들기 위해서 나도 학생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생이 되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네. 곧 새학기가 시작되어 눈코 뜰새 없이 바빠지겠지만, 한번 짬을 내어 남산에 야외수업 가는 기회를 마련해보자구나. 늘 몸도 마음도 건강하거라.
한철호

제자의 편지

선생님,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어느덧 2월도 다 지났습니다. 동대에서는 졸업식도 치루고 이제는 신입생을 맞이할 준비가 한창이겠군요. 저도 새내기였던 시절이 있었는데 어느새 졸업생이라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선생님, 실은 며칠 전에 제가 처음으로 가르쳤던 학생들이 드디어 졸업을 했습니다. 수업 때마다 저하고 한바탕 전쟁을 벌였던 학생들이라서 속으론 제발 빨리 졸업하길 바라기도 했답니다. 그런데 막상 졸업식이 끝나고 교실이 텅 비게 되니까 섭섭하더군요. 그동안 저도 모르게 미운정 고운정이 들었나봅니다. 문득 ‘선생님께서 우리들을 가르치시고 내보내실 때도 이런 마음이셨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학 시절을 돌이켜보면 선생님께서는 늘 저희들 가까이에 계셨습니다. 혹시 기억하시는지요? 제가 3학년이었을 때 금강산으로 3박 4일 동안 수학여행을 갔었지요. 경치가 무척 아름다웠지만 산에 오르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서야 선생님께서 수학여행 전날 계단에서 넘어져 다리를 다치셨다는 사실을 알았답니다. 산에 오르시기 불편하셨을 텐데 별로 내색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저희들을 챙겨주시고 인솔하여 일정을 무사히 마쳤지요.
선생님, 저희가 비록 성인이지만 선생님 앞에서는 한없이 어린 학생으로 돌아가는 듯 합니다. 사회생활에 혹은 수험생활에 지쳤을 때 선생님께서 저희들을 격려해주시겠지요. 그런 생각에 힘이 나고 또한 선생님께 부끄럽지 않은 제자가 되고 싶어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이제 며칠 후면 동대에 새로운 얼굴들이 등장하겠군요. 어떤 학생들이 들어올지 궁금합니다. 선생님, 후배들에게도 좋은 가르침 내려주시고 부디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2005년 2월 26일
박지숙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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