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인물
남자, 여자, 헐레벌떡 남학생

무 대
강의실이다. 무대 우측에 커다란 칠판이 있고 칠판 앞에는 출입문이 있다. 출입문에는 4호실이라는 글자가 크게 쓰여 있다. 칠판 좌측에는 고급스러워 보이는 교탁이, 그 뒤로 책상 세 개가 띄엄띄엄 놓여져 있다. 무대의 벽 가운데 창문이 있고 녹음을 알리는 듯 짙고 푸른 나뭇잎들이 보인다.

매미소리가 시끄럽게 들리더니 텅 빈 강의실에 여자 한 명이 들어온다. 손에는 책이 잔뜩 들려져 있고 메고 있는 가방은 아주 작다. 여자 강의실에 들어오자마자 빈 강의실을 보고 한숨을 짓더니 어깨를 한번 으쓱거리고는 교탁으로 가서 칠판을 닦는다. 칠판을 깨끗이 닦은 여자는 시계를 보더니 잽싸게 강의실 맨 앞에 있는 책상에 앉는다.
잠시 후 쿵쾅거리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남자 서두르면서 강의실로 들어온다. 강의실에 들어온 남자 주변을 둘러보더니 다행스러운 표정으로 강의실 맨 뒤에 있는 책상에 앉는다. 여자는 들어온 남자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고 노트와 필기구를 꺼내고는 노트에 열심히 무언가를 쓰기 시작한다.
무대 잠시 어두워지고 다시 밝아진다. 남자는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고 여자는 계속해서 필기를 하고 있다. 여자 잠시 시계를 보더니 필기구와 노트를 챙기기 시작한다. 책상에서 일어난 여자 강의실을 나가려다가 맨 뒤에서 자고 있는 남자를 깨운다.

여자 : (남자를 툭툭 치며) 저기요!
남자 : (잠에 취해 있다가 깜짝 놀라고는 침을 닦으려는 듯 입술 주변을 훔치며) 네?
여자 : 수업시간이 끝나가네요. 어서 일어나세요.
남자 : (눈을 비비며) 네? 아! 벌써 그렇게 됐군요. (잠시 생각하다가 계속 눈을 비비며) 오늘도 역시 아무도 안 왔나요.
여자 : (남자를 한심한 눈빛으로 한참을 쳐다보며) 네 그렇네요. 벌써 내일이 종강인데 아무도 오지 않네요.
남자 : (잠에서 완전히 깨려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그렇군요. 하긴 교수님조차 오시질 않으니.
여자 : 그러게요. 교수님조차 오지를 않으시네요.
남자 : (잠시 생각에 잠기다 깜짝 놀라며) 그런데 내일이 벌써 종강이라고 하셨나요?
여자 : (다시 남자를 한심하게 쳐다보며) 네. 벌써 그렇게 되었네요.
남자 : (아쉬운 듯) 그렇군요.
여자 : 그렇죠. 한번도 수업을 한 적이 없는데 벌써 내일이 종강이네요.
남자 : 아쉽군요. 꼭 듣고 싶은 수업이었는데.
여자 :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꼭 듣고 싶은 수업이었다구요?
남자 : 네 그럼요. 꼭 듣고 싶은 수업이었죠. (강의실 창문을 쳐다보며) 그래서 이렇게 더운 날 수업을 들으러 학교까지 온 거죠.
여자 : (계속해서 냉소적인 표정으로) 그렇군요.
남자 : (미소를 한번 짓더니 신나는 목소리로) 전 이 교수님의 "개미와 베짱이" 라는 연극을 정말 감명 깊게 본적이 있거든요. 그래서 이번 강의를 신청했어요.
여자 : (약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남자의 얼굴을 가까이서 쳐다보다니 다시 냉소적인 표정을 지으며 팔짱을 낀다) 네에.
남자 : (잠시 회상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정말 감명 깊게 본 연극이었어요. 남들보다 앞서겠다면서 매일같이 일만하고 살아가는 개미를 보며 베짱이가 관객들에게 이야기를 하는 장면에서는 정말이지 제 속이다 후련했다구요.
여자 : 그렇군요. 전 아직.
남자 : 아. "개미와 베짱이를 보지 못하신 모양이죠?
여자 : (잠시 머뭇거리더니 곧 당당한 목소리로) 그렇죠!
남자 : (다소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그렇군요.
여자 : (발끈하며) 왜요? 그게 뭐 잘못되었나요?
남자 : (의기소침한 표정으로) 아니요. 그냥 뭐 음…… 제가 감동적으로 본 작품을 아직 보시지 않으셨다고 생각하니 아쉬워서 그런거죠. 죄송합니다.
여자 : (당당한 듯 큰소리로) 뭐. 그렇게 잘못한 것은 없죠. 사실 전 연극에 별로 관심이 없어요. "연극의 이해"라 그냥 학점 따기 쉬운 과목이라 생각하고 신청한거예요.
남자 : 그렇군요.
여자 : 그렇죠!
남자 : 그렇다면. (잠시 망설인다)
여자 : 네?
남자 : 아뇨. 뭐. 그렇다면 왜 굳이 이렇게 더운 날에 수업을 신청 하셨나요?
여자 : (어깨를 한번 으쓱거리며) 항상 계절학기를 들어 왔거든요. 일찍 졸업을 하기 위해서죠. 전 늘 남보다 앞서가고 싶으니까요.
남자 :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듯) 늘 앞서가고 싶다……
여자 : (우쭐한 기분이 드는 듯) 그렇죠! 저는 늘 남보다 앞서가며 살아왔거든요.
남자 : 그렇군요.
여자 : 그럼요! (잠시 의아스러운 듯 남자를 쳐다보고는) 그럼 당신은 왜 이 더운 날 수업을 신청해서 이렇게 매일같이 나오시는 거죠.
남자 : 그거야. (당당한 목소리로) 저는 이 교수님의 연극을 좋아하니까 당연한거죠.
여자 : (조롱하듯이 한번 웃더니) 그럼 왜 이렇게 매일같이 잠만 자다 가는 건가요?
남자 : 그거야. 그래요. 교수님이 들어오시지 않으니.
여자 : 그건 말이 안되죠.
남자 : 아니 뭐가 말이 안된다는거죠.
여자 : 교수님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잠만 퍼질러 자며 수업준비는 하나도 안하면서 뭐. 이 교수님의 "개미와 베짱이" 라는 연극이 재미있었다고 말하다니!
남자 : 뭐가 잘못된 건가요.
여자 : 그렇죠! 교수님이 들어오지 않으셔도 수업을 준비하고 있어야죠. 교수님이란 언제 들어와서 수업을 할지 모르는 일 아니겠어요.
남자 : (중얼거리며) 수업 준비라……
여자 : 당연히 그래야죠!
남자 : 제가 잘못했군요. 죄송합니다.
여자 : (시해를 베풀듯) 뭐 그렇게 잘못한 것은 아니죠. 그래도 당신은 늘 이 수업에 빠지지 않고 들어왔으니까요. (텅 빈 강의실을 둘러보며) 보세요. 내일 수업이 끝나는 날인데 아직 아무도 오질 않고 있잖아요.
남자 : 심지어 교수님까지도?
여자 : 그렇죠!
남자 : 그렇군요.
여자 : 그래도 당신은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저 다음으로 수업에 충실했던 사람이죠.
남자 : (안심한 듯) 그렇네요.
여자 : 그럼요!
남자 : 다행이네요.
여자 : (계속해서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다)
남자 : (골똘히 생각하더니) 그나저나 이젠 수업이 하루밖에 남지 않았는데. 틀림없이 당신은 내일도 나올꺼고…… 교수님도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안나오겠죠. 그렇다면 역시 내일도 우리 둘 뿐이겠군요.
여자 : 당신 혼자만 나온다면 그렇겠죠.
남자 : (중얼거리며) 둘 뿐이라……
여자 : 그렇죠! 제가 수업에 빠지는 일은 흔하지 않거든요.
남자 : 그렇군요.
여자 : 그럼요. 제가 수업에 빠지는 일이라곤. 틀림없이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날이거든요.
남자 : 예를 들면?
여자 : 뭐 몸이 아프다거나 중요한 약속이 있는 날이겠죠. 참! 그러고 보니 애석하게 이 수업에도 한번 빠진 적이 있네요.
남자 : (깜짝 놀라며) 수업에 빠진 적이 있다고요.
여자 : (한숨을 쉬며) 그때는 정말 중요한 일이 있었어요. 강의 첫 날이었죠. 뭐 첫 날은 수업도 하질안고 소개만 하고 끝나잖아요. 그래서 수업에 빠졌지만 후회스럽고 그렇지 않았어요. 첫날은 출석도 잘 안 부르고. 뭐 여하튼 첫 날 수업이었으니.
남자 : 그렇군요. 사실 저도 첫 날 수업에 안 들어왔거든요. 뭐 괜찮겠다 싶었죠. 설마 그렇게 훌륭한 교수님의 수업인데 수강한 학생이 적어서 폐강이 되거나 그런 일은 없을 거 아니겠어요. 그냥 그 날은 왠지 학교에 가기 싫었어요. 사실 날씨도 너무 덥고 그 전 날 늦게 잠들어서 피곤하기도 했고요. 그래도 그 다음날부터는 꼬박꼬박 수업에 들어 왔잖아요. 그쪽도 알다시피.
여자 : 그럼요! 당신은 수업에 빠지지 않고 들어왔죠. 인정해줄께요.
남자 : 고맙습니다.
여자 : 뭐 그렇게 감사할 필요는 없죠. 당신은 그런 칭찬 정도는 들을만 했으니까요.
남자 : (중얼거리며) 그런 칭찬이라.
여자 : 그렇죠! 단지 그런 칭찬뿐이죠. (잠시 남자 표정을 살피며) 뭐 기분이 나쁘신가요. 사실 당신은 수업에 적극적이지 못했잖아요. 매일같이 나오기는 했지만 수업이 마칠 때까지 엎드려 잠만 자다 갔으니까요. 사실 그건 아무 의미가 없는거죠. 다람쥐가 다람쥐 통을 굴리는 것처럼 다만 부지런할 뿐인 미련한 행동이거든요.
남자 : 그렇군요.
여자 : 그렇죠!
남자 : (잠시 망설이더니) 하지만!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여자 :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죠?
남자 : 당신도 수업을 안 듣기는 마찬가지잖아요.
여자 : (다소 어이가 없는 듯) 저는 열심히 수업을 준비했어요. (들고 있는 노트를 보여주며) 이거 봐요 전 늘 책을 펴놓고 필기 준비도 하고, 언제나 제일 먼저 와서 칠판도 닦는다고요. 사실 지저분한 칠판은 집중이 안되거든요.
남자 : (중얼거리며) 칠판을 닦는다……
여자 : 그럼요! 매일같이 칠판을 닦죠.
남자 : 그렇군요.
여자 : 그렇죠!
남자 : 놀랍군요.
여자 : 뭐가요?
남자 : 매일같이 칠판을 닦는다고 하니.
여자 : (우쭐해하며) 그럼요!
남자 : 고맙네요. 매일같이 칠판을 닦는 줄 몰랐어요.
여자 : 뭐 그렇게 고마워 할 필요는 없어요. 칠판이 지저분하면 집중이 안되서 닦는 것뿐이니까요.
남자 : 그렇군요.
여자 : 그렇죠!
남자 : 하지만 그건 (강의실 문 밖을 가리키며) 저 밖에서 다음 수업을 기다리는 이들의 집중력만 높여주는 것 밖에 의미가 없겠군요.
여자 : 뭐 이렇게 늘 수업을 하지 않는 경우에만 그런거죠. 하지만 교수님은 언제든지 들어 올 수가 있는거라구요.
남자 : (중얼거리듯) 교수님은 언제든지 들어 올 수가 있다……
여자 : (시계를 보더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군요. 나가야죠. 좀 있으면 다음 수업이 시작 할 시간이네요.
남자 : 그렇군요.
여자 : 그럼 안녕히.
남자 : 잘 가세요.

무대 조명이 꺼지고 강의실 문 여닫는 소리가 들리더니 학생들 것으로 보이는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곧 여러 명의 학생이 책상에 앉는 소리가 들린다. 잠시 후 일정한 간격으로 또각또각 거리는 구두 굽 소리가 들리며 교탁에 사람이 올라가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분필로 칠판에 무언가를 쓰는 소리가 들린다.
잠시 정적이 흐른 후 무대 다시 밝아진다. 여자 강의실로 들어오자마자 칠판을 닦고는 책상 맨 앞에 앉는다. 곧 남자 뒤따라 걸어오더니 여자 뒷자리인 두 번째 책상에 앉는다. 다시 무대 어두워졌다 밝아진다. 여자 여전히 무엇인가를 쓰고 있고 남자 턱을 괴며 졸다 깨다를 반복하고 있다.

여자 : (남자를 잠시 쳐다보다가) 이봐요!
남자 : (깜짝 놀라며) 네.
여자 : 훗. 오늘은 그래도 엎어져 자지는 안네요.
남자 : 네?
여자 : 그쪽 말이에요. 오늘은 그래도 수업을 준비하려고 노력하시는 것 같아 보이신다구요.
남자 : 고맙습니다.
여자 : 뭐 그렇게 고마워 할 것은 못되죠. 그래도 졸고 있었던 건 사실이니까요.
남자 : 죄송합니다.
여자 : 뭐 그렇다고 그렇게 미안해 할 필요도 없어요. 분명 당신은 어제까지만 해도 매일 같이 수업에 상관없는 사람처럼 널부러져 잠만 자다 갔잖아요. 이렇게 턱을 괴고 고개를 저으며 잠을 쫓으려고 하다니! 괄목할만한 성장 아닌가요?
남자 : (쑥스러운 듯이) 네.
여자 : (가볍게 박수를 한번 치며) 어제 제 말을 듣고 느끼신 바가 많으신가봐요.
남자 : 뭐…… 네? 그런데 오늘도 아직 아무도 안 오고 있군요.
여자 : (시계를 보며) 그렇네요. 아직 아무도 안 오고 있네요. 벌써 강의시간이 다 끝나가는데 이러다가 수업한번 없이 이번 강의가 끝나겠어요.
남자 : 아쉽네요. 꼭 듣고 싶은 수업이었는데.
여자 : 그래도 우린 한 번 밖에 결석을 하지 않았으니 학점은 잘 나올거에요. 너무 상심하지는 마세요. 뭐 그쪽도 잠만 자다 갔어도 다른 학생들보다 출석 점수가 좋잖아요. 시험도 한번 안본 과목인데. 아마 저 다음으로 학점이 잘 나올걸요.
남자 : 그렇군요.
여자 : 그렇죠.
남자 : 그런데 저는 학점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어요. 전 다만 이 수업이 듣고 싶었던 것뿐이거든요. "개미와 베짱이"를 본 순간부터 이 교수님의 수업은 꼭 들으리라고 다짐을 했어요. 전 그 연극의 대사까지도 다 외우고 있다구요.
여자 : 그렇군요! 하지만 저는 학점만 잘 나오면 그만인데. 뭐 수업 따위야 어떻든 별로 상관없어요. 물론 재미있는 수업이면 당연히 더 좋지만요. 이 수업도 재미있을 것 같아서 신청한 것뿐이에요. 물론 열심히 해서 좋은 학점을 딸 자신도 있었지요. 사실 이런 과목일수록 학점 따기가 더 쉽거든요.
남자 : (중얼거리며) 학점 따기가 쉽다……
여자 : 그렇죠. 다른 교양 수업과는 달리 이런 수업은 시험도 잘 안보거든요. 열심히 나와서 수업만 듣다가 가면 대게는 학점이 잘나오기 마련이죠.
남자 : 그렇군요.
여자 : 그렇죠!
남자 : 그런데 한번도 수업을 한 적이 없는데 아쉽지는 않나요.
여자 : 이 수업 말씀이세요?
남자 : 네 이 수업이요. 그래서 말인데 우리끼리……

그때 한 학생 헐레벌떡거리며 강의실로 들어온다. 남자와 여자 일제히 책상 밑으로 숨는다. 강의실로 들어온 학생은 교실이 텅 빈 것을 보고는 강의실 밖으로 나갔다가 강의실 호수를 확인하고 전화를 건다.

헐레벌떡 남학생 : (큰소리로) 뭐라고 3층 강의실이라고 (사이) 그래 지금 내려갈게. 교수님은 아직 안 오셨겠지.

전화를 걸어 자신이 들을 수업의 강의실을 확인한 남학생은 곧 강의실을 나간다. 남자와 여자 남학생이 나가는 것을 보고는 가슴을 한번 쓸어내리고는 다시 책상에 앉는다.

남자 : 깜짝 놀랐죠?
여자 : 뭐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죠. 갑자기 누가 들어와서 난 또 수위아저씨 인줄 알았거든요.
남자 : 다행이네요. 그나저나 마지막 시간인데 우리끼리 수업을 해 볼 생각은 없으세요?
여자 : 우리끼리요?
남자 : 그렇죠! (회유하듯) 아마 교수님께서 아신다면 학점을 좀 더 잘 주실지도 모르잖아요.
여자 : 그럼 당신하고 나하고.
남자 : 그렇죠! 연극을 하는 거죠. 어때요.
여자 : (잠시 생각하더니) 뭐 나쁘진 않네요. 대신 제가 주인공을 할게요.
남자 : 그래요! 그럼 우리끼리 연극을 하기로 해요.
여자 : 그런데 어떤 것을 연극하죠. 저는 아는 연극이 없는데요.
남자 : 당연히 ‘개미와 베짱이’로 해야죠.
여자 : 그럼 이 교수님이 썼다던.
남자 : 그렇죠! 정말 감명 깊은 연극이거든요.
여자 : 그렇군요. 좋아요. 그럼 그걸로 하기로 해요. 이왕 하는 거 누가 볼지도 모르니깐 그럴싸하게 해야 하지 않겠어요

여자 칠판 앞으로 걸어가더니 분필로 크게 “개미와 베짱이” 라고 쓴다.

남자 : 네 좋네요. 여기 제 가방에 그 연극 대본이 있어요. 전 늘 그 대본을 가지고 다닌답니다. 너무 감동적으로 본 연극이라서 그런거에요. 사실 들고 다닐 필요도 없지만. 전 그 대사를 전부 외웠거든요. 그래도 그냥 한번씩 꺼내서 읽곤 하죠. 그건 외우는 것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거든요.
여자 : 그럼 그건 저한테 주시면 되겠네요. 누가 주인공이죠. 개미인가요? 아니면 베짱이 인가요.
남자 : 당연히 베짱이가 주인공이죠.
여자 : 그럼 제가 베짱이를 할께요.
남자 : 베짱이를 한다구요?
여자 : 네 당연히 제가 주인공을 해야죠. 제가 수업에 제일 적극적이었잖아요.
남자 : 그렇군요. 뭐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그럼 제가 개미를 하면 되니까요.
여자 : 그래요. 그럼 당신이 개미를 하고 제가 베짱이를 하죠. 그런데 베짱이는 성격이 어떤가요. 그래도 제가 주인공인데 성격이 어떤지를 알아야지 연기를 더 잘할 것 아니겠어요. 그래야 연극도 더 좋아질테고 음 그래야 학점도 더 잘나올꺼 아니에요.
남자 : 베짱이는 음 그러니까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죠.
여자 : 음악을 좋아하는군요. 그리고요?
남자 : 그것뿐이죠. 음악을 너무나도 좋아하는 친구죠.
여자 : 그렇군요. 그럼 성격이 어떤가요?
남자 :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라고 했잖아요.
여자 : 그래요. 그랬죠. 그런데 음악을 좋아하는 그 친구가 어떤 성격이냐구요.
남자 : 베짱이는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어요. 오직 음악만 좋아하죠. 성격을 물어보셨군요. 그래요. 베짱이는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답게 느긋하고 여유를 즐길 줄 알죠.
여자 : 그럼 뭘 먹고 사나요. 아 맞다! 음악을 하면서 음반을 내고 콘서트를 하고 또 가끔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노래를 해서 주인한테 돈도 받고 뭐 그렇게 벌어서 먹고 살겠죠. 연주회 같은 것도 하구요. 오케스트라 그러니까 클래식 같은 거 말이에요. 전 그런 웅장한 무대에서 지휘를 해보고 싶어요. 그런 장면도 있으려나? 커다란 홀이 있는 그런 무대에서 막대기를 들고 지휘를 하고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감동을 받고 연주를 마치면 뒤돌아서 멋지게 인사를 하고 나오는 그런 장면 말이에요. 정말 주인공답지 않나요? - 이하생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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