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글서글한 미소와 호탕한 목소리로 만나자마자 악수를 청하는 김기봉 동문. 밝은 모습으로 악수를 청하는 그의 두 손에는 자신의 몸을 의지하기 위한 목발이 들려 있다. “3살 때 찾아온 소아마비로 이 목발에 의지해 살아온 세월이 벌써 40년이네요.” 대학 시절에는 통학을 위해, 요즘은 문화활동을 위해 하루가 멀다 하고 원주와 서울을 왕래한다며 미소 짓는 그에게 불편한 다리쯤은 큰 걸림돌이 되지 않는 듯해 보인다.
“한창 학생운동에 대한 탄압이 심했던 80년에 이념 서클의 대표로, 주요 학생운동 지도자 리스트에 올라 수배생활까지 했었죠. 이것이 고향인 원주에 내려와 본격적인 문화 운동을 하게 된 계기입니다.” 학생 운동가들에 대한 극심한 탄압을 피해 본가로 내려온 그는 자신의 고향인 원주가 70년대 재야운동, 민주화의 성지라는 점을 새롭게 알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실패로 끝난 민주화 운동을 통해 특색 있는 지역 문화의 필요성에 대해 인식하고, 대학 3학년 시절부터는 민속문화연구회 활동을 시작했다. “모든 대중들을 하나로 모아내는 데에는 어떤 것보다 문화 활동이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고 생각해요.” 이를 위해 지난 91년에는 소극장인 ‘밝은 마당’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연극의 기획에 더불어 시민사회 정보네트워크 조성을 위한 활동을 진행 중에 있다.
이러한 그의 노력이 통했는지 사회적으로 지역 분권적 문화활동들이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중요성이 점차 강조되고 있는 실정이다.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분권정치가 시작되고 이에 따라 지역 문화진흥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올해 초부터 정부에서 역시 특화된 지역 문화 개발을 위한 지역문화진흥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현재 문화관광부, 민예총(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등이 주축이 돼 전국적인 토론회 등을 개최하고 있으며, 김 동문 역시 민예총 사무국장으로 정기국회에서 법안 상정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진행 중이다.
이러한 문화 활동을 하며 무엇보다 아쉬운 점은 우리학교 선·후배 동문들을 쉽게 만나볼 수 없다는 점이라며 씁쓸한 미소를 짓는 김기봉 동문. 우리학교는 전통적으로 문화, 예술 분야가 발전돼 있는 만큼 많은 후배들이 정책적인 문화 활동 분야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진출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누구보다 크다는 그이다.
그의 지금의 노력들이 빛을 발해 지역문화 발전에 꽃을 피울 수 있을 그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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