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연출가인 안민수선생과의 만남은 1981년 동국대학교 교정에서 이루어졌다. 이후 20년 이상의 긴 시간동안 선생과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안선생의 수업을 통해 예술가에 대한 기본정신을 배웠다는 것을 잊을 수 없다.
선생은 두 가지 면에서 내게 영향을 주었는데 하나는 교육자로서의 면모이고 다른 하나는 예술가로서의 측면이다. 안선생의 주전공은 연극연출이지만 연출 외에도 연기술에 대해 많은 가르침을 주셨다. 안선생의 예술론은 몇 가지 주안점이 있다. 예술가의 쟁이기질, 즉 우리 과거 역사 속에서 ‘딴따라’라고 불렸던 천한 광대예술을 비하하지 않고 스스로 자존심을 갖도록 만들었다는 것. 그는 예술을 즐겁게 잘 노는 것이라고 간단히 정의했다.
이 간단한 정의 속에는 그 누가 정의한 복잡한 예술론보다 참된 금과옥조가 들어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예술의 과학적 원리를 중시했다. 종래 기성세대들은 예술을 기분이나 멋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안선생은 예술창작이 철저히 과학적 원리에 기반한 것이란 점을 강조했다. 그러다보니 그의 유명한 말이 떠오른다. “무조건 열심히 하면 삐뚤어진다”는 것이다. 종래의 열심히 하면 된다는 성실론에 대해 반대되는 말이다. 예술지망생들은 항상 열심히 한다는 것을 최고의 원리로 삼았었는데 안선생은 이 말에 대해 수정을 가한다. “정확히 열심히 해야 목적을 달성한다” 안선생의 논리는 궤변 같지만 사실은 뒤집힌 진리이다.
또 이런 말도 있다. “싸구려로 놀지 마라” 그는 예술가의 지조를 특히 강조한다. “예술가는 돈을 좇아가지 말고 돈이 좇아오도록 해야 한다” 살아가면서 이러한 말들이 맞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한참 인기가 오른다고 하여 싸구려로 놀던 예술가 혹은 연예인들은 그 수명이 오래 가지 못하고 만다. 대신 자신의 품위를 계속 만들어나간 사람들은 시대가 변함에 따라 그 작품의 진가가 올라가서 돈으로 따질수 없는 장인의 경지에 오르게 된다.
배우는 성우(聖優)라고 했다. 가장 위대한 배우는 바로 성인(聖人)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위대한 배우는 석가나 예수란 말인가? 이러한 가르침은 학생시절의 나에게 충격을 안겨줄 정도로 궤변이었다. 그러나 이 지침은 일생 나에게 커다란 가르침으로 남는다.
안선생과 나의 인연은 고등학교 시절로 넘어간다. 고등학교 일학년때 장학퀴즈에 나간 적이 있었다. 그때 내가 맞춘 답 가운데는 안민수의 연극 ‘하멸태자’의 이름이 있었다. 70년대 한국연극사에서 미국공연을 통해 세계적 명성을 얻었던 그 연극을 난 당시 보지는 못했어도 지식인의 교양으로 이름은 알고 있었다. 내가 맞췄던 그 연극의 연출자를 대학에 들어와 만나게 되었고 그의 영향을 깊이 받게 될 줄이야. 80년대 중반 안민수의 ‘리어왕’을 보고 브레히트와 아르또의 세계를 이해했다.
난 안민수의 연극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놓고 싶은데, 아쉬운 것은 많은 한국인이 그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 재 형
영화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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