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元曉, 617~686)는 한국의 독창적인 사상가이다. 그는 인도와 중국의 여러 경교(經敎)를 육화하여 ‘일심의 철학’을 구축했다. 87종 180여권이었던 원효의 저작은 22종 남짓 남아있다. 흩어진 것을 모은 집일본까지 치면 몇 종이 더 늘어난다. 때문에 이들 중에서 그의 대표작을 뽑아내기가 쉽지 않다. 원효의 사상적 역정은 일심(一心)-화회(和會)-무애(無碍)의 기호로 표현된다. 그리고 이들 코드는 각기 ‘대승기신론소’와 ‘금강삼매경론’과 ‘화엄경소’에 대응된다. 이 세 텍스트는 저마다 일심-화회-무애의 기호를 견지하면서도 각기 일심의 기호로 귀결되고 있다.
원효는 ‘대승기신론’의 핵심 구절을 패러디하여 자신의 깨달음을 표현했다. 그는 무덤 속에서 잠을 자다 동티(動土)를 만났다. 어제 잤던 땅막(土龕)과 오늘 잤던 무덤(鬼墳)을 대비해 보았다. 깨끗한 마음과 때묻은 마음은 이미 일심 속에 있었다. 순간 원효는 둘이라는 분별이 생겨나기 이전의 ‘한 마음’(一心)을 발견했다. 때문에 중국으로의 공간 이동은 무의미했다. 그는 ‘따뜻한 마음’이자 ‘넉넉한 마음’인 일심을 통해 자신의 철학을 입론했다. 그 위에서 독자적인 해석의 꽃이 피어났다.
‘대승기신론’은 일심(一心)-이문(二門)-삼대(三大)-사신(四信)-오행(五行)-육자법문(六字法門)의 틀로 되어 있다. 여기서 ‘대승’은 일심이자 중생심이다. ‘기신’(起信)의 ‘기’는 이 논서의 글에 의하여 중생의 믿음을 일으킴을 의미한다. ‘신’(信)은 결단코 그러하기에 진리에 대해 믿을 수밖에 없음을 뜻한다. 그래서 이치가 실제로 있음을 믿으며, 닦아서 얻을 수 있음을 믿으며, 닦아서 얻을 때에 무궁한 덕이 있음을 믿는 것이다. 믿음은 한량없는 공덕이 있으므로 이 논서에 의해 발심하게 되기에 ‘기신’이라고 말하고 있다. ‘론’은 인간이 실천해가야 할 이치를 밝힌 글이다.
원효의 기신론관은 화합식(和合識)으로서의 아뢰야식을 구체적으로 예증하고 있다. 그는 근본 무명이 맑고 깨끗한 마음(심진여문)을 훈습함으로써 깨닫지 못한 마음이 처음으로 나타나는 무명업상(無明業相), 이 극미한 동념에 의해 소연경의 대상을 볼 수 있게 되는 전상(轉相), 이 전상에 의하여 경계가 실제 있는 것처럼 나타나게 되는 경계상의 세 가지 미세한 마음(三細)이 제8 아뢰야식에 해당된다고 했다. 원효는 자성청정(自性淸淨)의 깨달음의 특징을 내적인 관행(自利)과 외적인 현실참여(利他)로 파악했다. 하여 마음의 근원에 이른 깨달은 이는 깨달은 상태에 안주하지 말고 이를 다시 사회에 환원할 것을 역설했다.
원효는 이 논서의 구도에 입각하여 ‘한 마음’의 맑고 깨끗한 측면의 설명에 치중하는 중관(中觀)사상과 마음의 물들고 때묻은 측면의 해명에 집중하는 유식(唯識)사상을 종합 지양하여 중도 지혜의 활로를 열어 젖혔다. 그는 ‘중론’과 ‘십이문론’ 등의 사상은 “모든 집착을 두루 깨뜨리며 또한 깨뜨리는 것과 깨뜨림을 당한 것을 다시 인정하지 않아 깨뜨리기만 할 뿐 세우지 못하여 보내기만 하고 두루 하지 않는 논”이라고 했다. 이와 달리 ‘유가사지론’과 ‘섭대승론’ 등의 사상은 “깊고 얕은 이론들을 온통 다 세워서 법문을 판별하였으되 스스로 세운 법을 모두 버리지 아니하여서 세우기만 할 뿐 깨뜨리지 않고 주기만 할 뿐 빼앗지는 않는 논”이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대승기신론’은 “세우지 않는 바가 없으면서 스스로 부정하고, 깨뜨리지 않는 바가 없으면서 도리어 인정하는 모든 논서의 조종이며 모든 쟁론을 평정시키는 주인”이라고 격찬하였다.
원효는 이 논서의 ‘한 마음’과 ‘진여-생멸’문의 구도를 통해 자신의 사상적 구조로 원용하였다. 그의 오도 과정도 ‘기신론’의 일심 이문의 구조 그대로였다. 그 체계는 논서의 일부만을 주석한 젊은 시절의 ‘별기’(해동별기)와 달리 만년에 지은 ‘소’(해동소)에 잘 담겨져 있다. 원효의 ‘해동소’는 이 논서의 삼대 주석서 중 위찬(僞撰) 설이 있는 혜원의 것과 분과(分科)와 언구(言句) 해석에 있어서 원효 것을 그대로 답습한 법장의 것과는 크게 변별된다. ‘해동’은 여타의 중국 것과 변별되는 원효 주석의 ‘독자성’에 부여된 별칭이었다. 따라서 그는 ‘대승기신론소’를 통해 이 논서의 가치를 제일 잘 드러내었고 가장 잘 육화한 사상가로 평가받고 있다.

고 영 섭
불교대학 불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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