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는 혁명이다. 피지배 대중의 일부인 학생들이 중심이 된 민중봉기가 기존의 정치권력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다. 즉, 혁명의 기본 성립요건을 달성했다. 또한 4·19는 단순한 정치권력의 교체를 넘어서 통치의 원칙(regime)자체를 근본적으로 뒤바꾸는 결과를 가져왔다. 즉 권위주의적 통치로부터 자유민주주의적 통치로 바꾼 것이다. 비록 4·19로 인한 변화가 프랑스혁명이나 러시아혁명처럼 체제 자체의 변화를 초래한 것은 아니지만, 분단국가라는 조건을 감안한다면 정권의 변동과 동시에 통치의 원칙까지 뒤바뀌게 된다는 것은 혁명적 변화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유혈광주항쟁의 시발이 된 5월 18일 시위는 이전의 많은 혁명들과 마찬가지로 학생시위로 시작됐다. 그러나 시위 초부터 강경 진압에 나선 공수부대원들의 무자비한 진압은 오히려 시위대 주변의 군중들을 분노케해 이들로 하여금 학생시위에 가담토록 부추겼다. 18일 오후부터 시위는 이미 학생시위의 수준을 뛰어 넘어 시민항쟁으로 발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위에는 다양한 연령과 계층의 사람들이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참여했지만, 무장 투쟁 과정에서는 젊은 학생들과 노동자들이 주로 참여했다. 거기에다 5·18당시의 사망자, 부상자, 구속자, 구속 시민군을 계급·직업별로 분류해보면, 노동자, 농민, 영세상인 등 기층민중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생산직 노동자의 비중이 매우 높다는 사실과, 가두투쟁 지역은 영세 중소기업체와 빈민촌이 밀집한 지역과 연결돼있는 반면, 부촌지역은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 등을 들어 광주항쟁의 성격을 민중항쟁으로 보아야 한다는 입장이 있다.
민중항쟁론이 갖는 문제점은 과연 구속자나 사망자의 직업 또는 계급구성을 살펴 전항쟁기간 동안 참여한 모든 사람들의 사회경제적 성격을 추단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러나 훨씬 근본적 문제는 ‘민중’개념의 모호성이다.

‘민중’과 ‘시민’의 차이점

전통사회의 피지배 대중을 민중이라 지칭하는 것과 산업사회에서 ‘시민’과 구분되는 개념으로서 ‘민중’을 지칭하는 것은 정치사회학적 의미는 판이하기 때문이다. 실제 현대 한국사회에서 민중이라는 개념은 계급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비계급적 전통사회 개념과 유사하게 이해됨으로써 다양한 민주화운동세력들에 의해 인기 있는 개념이 된 감이 적지 않다.
산업사회에서 시민과 뚜렷이 구분되는 개념으로서의 ‘민중’이란 대체로 노동자·농민·도시빈민 등을 아우르는 집단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이러한 범주의 제한성을 분명히 하기 위해 ‘기층민중’이란 개념이 있다. 그러나 민중개념을 사용하는 논자들 중에는 민중개념을 기층민중에 한정해 사용함으로써 범주의 제한성·배타성을 분명히 하는 경우, 중산층을 민중의 개념에 포함시키거나 시키지 않기도 하는 경우, 중산층을 포함한 ‘총체적으로 소외된 피지배자’ 모두를 민중으로 보는 경우, ‘총체적으로 소외된 피지배자들’이 대자적 의식을 지닐 경우에만 민중으로 보는 경우 등 다양하다.

광주항쟁은 ‘시민항쟁’이다

과연 그와 같은 다의적 개념을 사용해 구태여 시민과 민중을 구분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시민사회란 부르주아지, 중간층, 프롤레타리아트, 도시빈민, 농민 등의 다양한 사회적 범주들로 혼합된 구성체이다. 각 요소범주들이 시민사회내에서 차지하는 비율이나 경제적 형편은 사회변동과 더불어 변화한다. 시민사회가 곧 부르주아지 사회를 의미하던 19세기 상황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해방과 동시에 대중민주주의를 경험하게 된 한국사회는 처음부터 시민사회를 경제적 개념보다는 정치적 개념으로 받아들였다. 경제성장과 더불어 시민사회의 물적 토대가 성장하게 됐으나, 그것이 계급적 구분을 강화하기보다 오히려 계급적 구분을 희석시키는 방향으로 나타났다. 서구의 경우처럼 뚜렷한 계급구분의 단계를 거쳐 탈계급적 단계로 발전한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따라서 시민사회를 구태여 민중사회와 구분짓고자 하는 시도는 시민사회를 여전히 부르주아민주주의와 동일시하는 몰역사적 인식태도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둘째로, 항쟁의 이념적 지향이 ‘민중적’이었다는 데 있다. 광주항쟁이 뚜렷한 이념적 프로그램에 입각하지 못한 방어적이며 대중적인 투쟁에 불과했다는 주장과 이는 날카롭게 대비된다.
항쟁의 민중성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입장에서는 “노동삼권 보장” “우리는 모든 국민이 골고루 잘 사는 나라를 바라고 있습니다. 고관대작만 호의호식하고 특권층만 배부르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서민·노동자·농민이 골고루 잘 사는 나라, 경상도·전라도 차별없이 평등하게 잘 사는 나라를 원하고 있습니다”라는 주장이 지닌 의미를 과장하고자 한다.
열흘에 걸친 항쟁기간동안 민주적 사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위한 다양한 요구가 제기되는 것은 당연하다. 노동삼권이나 평등한 사회에 대한 요구들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들 요구들이 시민의 이름으로서가 아닌 민중의 이름으로만 제기돼야 할 이유는 없다. 권위주의적 국가권력에 대한 저항이 항쟁의 주요 목적이었고, ‘민주화 요구’가 가장 주요하고도 지속적인 요구였다는 것이 사실이다. 4월혁명 이래 민주화의 요구가 권위주의 국가권력에 의해 얼마나 억압돼 왔는가를 이해한다면, 희생을 무릅쓰고 제기된 민주화의 요구라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주요한 항쟁의 이념이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할 때 5·18은 민주화 요구를 하는 시민들에 의한 민주항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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