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공학은 초기에 식량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시도에서 시작되었다. 기근을 해결하려는 선한 의도가 생물학자들에게는 중요한 화두였으며 또한 시대적 사명으로 요구되었다. 그 결과 절대적인 빈곤을 완화시키는 많은 성과가 있었다. 가뭄에 강한 식물종자의 개발과 영양을 강화시킨 작물들이 생명공학의 빛나는 역사의 산물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생명공학의 역사에서 자신들의 한계를 성찰하는 기회는 많지 않았다. 생명공학은 새로운 연구대상을 가지게 되었고 그 대상은 단순한 생명체가 아닌 규범적 인간이다.

생명에 대한 다양한 논점들

인간생명에 대한 논의는 포괄적으로 진행되어왔다. 뇌사문제가 대두될 때부터 인간 생명에 대한 상대화는 시작되었다. 법적으로 타협한 결과는 뇌사를 심장사와 구분하여 일정한 기준을 두고 허용하자는 것이었다.
뇌사논의는 승낙의 주체가 분명한 경우 크게 기존의 법질서와 충돌하지 않았다. 그러나 새롭게 등장한 배아의 생명, 즉 초기 생명 보호의 논쟁은 전혀 다른 차원을 형성한다. 가장 중요한 쟁점은 ‘인간의 구분적인 취급을 사회적으로 승인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요컨대 생명에 대한 이해는 인간 존재의 구분을 인정하는 견해와 구분없는 생명존중을 원칙으로 하는 견해로 나뉜다. 인간을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은 여러 가지 다양한 관점에서 제안되었다. 생명에 대한 구분기준은 지적능력의 유무와 의사소통에 대한 합의가능성 마지막으로 생명의 절대성이 기준이 된다.
먼저, 인간 생명에 대한 논의에서 흥미로운 주장은 ‘인간은 인식능력의 여부에 의해서 선별될 수 있다’는 논증이다. 이러한 사고는 매우 도전적으로 제기되었다. 이를 주장하는 학자들은 인간 생명의 시점을 인지능력이 갖추어지는 출생 이후의 시점, 어떤 극단적인 경우는 생후 3개월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이 견해들은 예외 없이 비종교적인 세속화된 국가의 체계 또는 합리적·이성적 성찰을 근거로 하고 있다.
또 하나 중요하게 거론되는 관점은 인간의 생명에 대한 시기를 절차적으로 확정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현재 진행되는 생명에 대한 거의 대부분의 이해들은 이 견해에 많이 동조하고 있다.
영국이 14일 미만의 체외 수정된 냉동 배아를 실험할 수 있게 결정한 근거는 사실 ‘14일 미만’이 갖는 생물학적인 의미가 아니다. 수정이 개시된 후 착상전 배아는 14일이 지나면 원시선(primitive streak)이 발생한다. 이 단계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신경조직이 발생한 시점으로 인정하는 단계이다.
그러므로 엄밀히 따지자면 14일 미만의 배아에 대한 실험 허용은 인식능력을 기준으로 한 위의 견해 같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생명의 절대성에 대한 논의이다. 절대성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인간 생명을 수정시부터 인정해야 한다. 종교적인 배경을 가졌건 아니면 다른 근거에서건 이 견해는 현재 합의가능하다는 입장과 동일하다. 생명공학자들의 입장에서 이는 배아 연구를 중단하게 만들 수 있는 심각한 제한이다.
배아가 인간으로 선언되면 극단적인 예외를 인정하더라도 배아 줄기세포의 이용과 배아에 대한 유전적 조작행위는 원칙적으로 인체실험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인간 생명과 신체적 완전성에 대한 침해행위가 된다.

배아보호를 위한 형사정책

법과 도덕의 구분논의가 한창일 때 도덕과 법의 분리논의는 많은 지지를 받았다. 법은 도덕과 구분된다는 법철학적 논의가 실제로 법과 도덕 간의 성향 차이를 말한 것인지 아니면 방법의 차이를 다룬 것인지는 심각하게 논의되지는 못했다. 소박한 수준에서 법과 도덕은 다르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법과 도덕은 분명히 다른 성향을 가진다. 그러나 사회 전체에서 기능하는 원리는 동일한 차원을 갖는다. 윤리는 결국 사회규범이며 사회규범의 명문화가 바로 법인 것이다.
상기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면 생명윤리는 사회적으로 강제되어야 하는 특성을 가진다. 형사정책적 강제는 단계에 따라서 최종적으로 형사법이라는 수단을 택할 수밖에 없다. 형사정책이 전면에 나서서 모든 것을 진두지휘할 수는 없으나 최종적인 규범위반의 확인과 그 위하에 대해서는 사회적 정의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형사법적 개입의 근거가 일부에서 주장하듯이 생명공학에 대한 윤리적 불쾌감이나 도덕적 실망감, 또는 순수한 종교적 신념에서 직접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생각이나 감정들은 일반인들의 일상적 관념에 자리잡을 수는 있지만 형사정책적 개입의 근거로는 부적합하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형성된 법익관계에 반응하는 법이므로 매우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방법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생명윤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형사법이 동원되는 것이 아니라 형사법의 결과로 생명윤리가 준수되어야 하는 것이 핵심이다.
형사정책에 새롭게 논의되고 있는 초기 생명 보호의 문제는 결국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시대적 재확인 문제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과거 정치적·사회적 착취와 억압에 반대하기 위하여 제안되었다. 인간의 존엄성 물음은 오늘날 순순 생물적 존재로 전락하고 있는 인간의 정체성에 대해서 다시 질문하고 있다.
생물학과 의학이 발달함에 따라서 인류가 처한 환경은 많이 개선될 수 있다. 질병으로부터의 해방과 건강한 삶의 보장은 모든 인류가 원하고 있다. 그렇다고 살아있는 사람들만을 위하여 태어나야할 사람들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다.
배아 생명권을 존중하는 배려는 결코 생명공학의 미래를 막는 행위가 아닌 생명공학의 인간성을 회복해주는 시도이다. 그로 인하여 사회에서 인간이 갖는 의미와 그 정체성에 대한 확인을 시도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를 위해서 가져야 하는 형사정책의 입장은 이성적이고 현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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