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언련 조영수 대외협력부장

민언련 조영수 부장
민주당 김유정 의원은 지난 달 11일 국회 긴급현안질의에서 “청와대가 용산 사태를 통해 촛불시위를 확산하려고 하는 반정부단체에 대응하기 위해 ‘군포연쇄살인 사건을 적극 활용하라’고 지시했다”고 폭로해 파문이 일었다. 또 오마이뉴스는 이날 김 의원이 폭로한 청와대 ‘문건’ 내용을 입수해 보도했다.

청와대 홍보지침 사건

오마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경찰청에 ‘군포연쇄살인 사건 적극 활용’ 지시를 내린 사람은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의 한 행정관이다.

문건은 “용산 참사로 빚어진 경찰의 부정적 프레임을 연쇄살인사건 해결이라는 긍정적 프레임으로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시작해 “언론이 경찰의 입만 바라보고 있는 실정이니 계속 기사거리를 제공해 촛불을 차단하는 데 만전을 기해주시기 바란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또 “▲연쇄살인 사건 담당 형사 인터뷰 ▲증거물 사진 등 추가정보 공개 ▲드라마 CSI와 경찰청 과학수사팀의 비교 ▲사건 해결에 동원된 경찰관, 전경 등의 연인원 ▲수사와 수색에 동원된 전의경의 수기” 등을 홍보의 구체적인 예로 들어 지시하고 있다.

여론을 호도하려는 구체적 정황이 드러났는데도 청와대는 부인으로 일관하다가 한 행정관의 개인적인 일로 치부하고 구두 경고를 하는데 그치는 등 축소,  은폐에만 급급했다. 또 해당 행정관은 여론의 비판이 거세지자 사퇴하는 것으로 일단락 지으려 했다.

경찰도 마찬가지다. 처음에 경찰은 ‘홍보지침’ 이메일을 받은 적이 없다고 발뺌했다. 그러나 청와대가 보낸 사실을 시인하자 그때서야 ‘청와대가 시인하지 않았는데 우리가 어떻게 먼저 시인 하냐’, ‘업무에 참고만 했을 뿐’이라고 말을 바꿨다.

조중동의 소극적 보도

이렇게 청와대의 ‘언론조작’ 의도가 불거졌는데도, 조선·중앙·동아일보는 철저하게 소극적 보도로 일관했다.

2월 11일 김유정 의원이 의혹을 제기했는데도, 조선·중앙은 김유정 의원의 발언내용만을 짧게 보도하는 데 그쳤고, 동아일보는 보도조차 하지 않았다.

12일 김 의원이 폭로한 청와대 ‘문건’ 내용으로 사회적으로 파문이 일고 있는데도 조선일보는 14일 <“용산사태 확산 막는 데 군포살인 활용” 이메일 경찰청 보낸 청와대 행정관 경고>(4면)라는 제목의 기사 1건을 싣고 ‘개인 차원’ 이었으며 행정관에게 ‘경고’를 했다는 것을 애써 부각시키는데 그쳤다.

중앙일보는 아예 기사로도 다루지 않고, ‘브리핑’ 꼭지에서 <청와대 ‘강호순 사건 홍보 지침’ 행정관에 경고>(14일, 6면), <‘강호순 활용 e-메일’ 청와대 행정관 사직>(16일, 8면)이라는 제목으로 1단 처리했다.

동아일보는 <야 “용산사건 축소 시도” 청 “지침-공문 안내렸다”>(13일, 8면), <청, 홍보지침 내린 행정관 구두경고 야 “여론조작 지시-보고라인 밝혀야”>(14일, 8면)에서 사건의 실체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고 여야의 공방으로 다루는데 그쳤고, 16일 <청 ‘홍보지침 e메일’ 행정관 사의>에서도 행정관의 사의 표명만을 단순전달했다.

16일 이후에는 조선·중앙·동아에서 ‘홍보지침’관련 보도는 사라졌고, 강호순의 여죄발표에 또 다시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한겨레와 경향은 이러한 의혹을 자세하게 다루고, 철저한 규명을 촉구했다.

청와대와 경찰이 이메일을 주고받은 시점이 2월 3일이라고 밝히고 있어 조선·중앙·동아의 보도와 ‘홍보지침’을 연결 짓긴 어려운 측면이 있다. 1월 31일(총 26건)부터 2월 2일(총 24건)까지 폭주하다 이후부터는 보도 건수가 급격히 줄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조선·중앙·동아일보의 보도행태로 봤을 때 청와대의 ‘홍보지침’이 없더라도 용산 참사를 무마하고 바닥에 떨어진 정권과 경찰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음을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중앙·동아일보는 언론자유를 뒤흔들 우려마저 있는 청와대 ‘지침’보다 ‘정권의 안위’가 더 중요했다. 스스로 언론의 양심을 저버렸다. 노골적으로 사안을 축소하는가 하면 ‘청와대 직원 개인의 문제’로 호도하며 ‘정권 감싸기’에 앞장섰다.

용산참사와 관련해서도 경찰의 살인진압을 감싸고, ‘불법시위를 벌이다 죽었으니 어쩔 수 없다’는 논리로 진실을 은폐해 왔다. 그래서 이렇게 태연하게 사안을 축소하고 ‘침착하게’ 넘어가는지도 모르겠다.

여론호도 정부에 독

조선·중앙·동아는 이번 사안을 축소하는 것이 ‘정권을 돕는 길’이라고 여길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할 수도 있는 심각한 사안이다. 이번 사건을 축소하고 호도하는 것이야 말로 ‘정권을 망하게 하는 길’이다. 언론을 조작하려는 ‘홍보지침’마저 모른체하는 조선·중앙·동아가 신문시장에서 1, 2, 3등을 다툰다는 사실이 너무 부끄러울 따름이다.

한편 이명박 정권은 언론 보도에 대한 숱한 외압 의혹, 방송장악 시도, 인터넷 통제 등 국민의 눈과 귀와 입을 틀어막는 반민주적 행태를 저질러왔다.

이것으로도 부족해 ‘변종 보도지침’까지 만들어 국민 6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을 물타기하고 국민의 관심을 돌리려 했다면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연쇄살인범을 내세워 공권력의 잘못을 덮으려 했다’는 발상 자체부터 엽기적인 국민기만이다.

설령 국민소통비서관실의 행정관이 ‘개인적’으로 한 일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청와대 직원이 ‘국민소통’을 내세워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 일을 제 임무로 알았다면 그 자체가 이 정권의 상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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