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대 강상중 교수의 ‘자기철학’ 분석 통한 ‘불교학’ 찾기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
지은이: 강상중
옮김이: 이경덕, 임성모
펴낸곳: 이산
아르헨티나의 작가 보르헤스(1899∼1986)는 “많이 읽거나 한 번 읽기보다 다시 읽기가 더 좋다”(이남호, ‘보르헤스 만나러 가는 길’, 민음사, p.36)고 말한다. 다시 읽는 것은 처음 만났을 때 알 수 없었던 많은 것을 새롭게 드러내기 때문이리라. 도쿄대학 강상중(姜尙中, 1950 ∼ )교수의 책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 역시 내가 두 번 읽은 책이다. “명저다!”

저자는 ‘자이니치(在日)’, 즉 일본에서 태어난 우리의 교포로서 정치학을 전공하였다. 이 책에 실린 6편의 글들은 주제를 향한 구심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조금씩 밖으로 탈주(脫走)해 간다. 어떻게 변주가 이루어지는지 따라가는 맛이 있다.

그런데, 먼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주제를 고백하는 첫 번째 글 ‘규율과 지배하는 지식 - 베버· 푸코· 사이드’이다. 이는 차라리 철학 에세이라 해야 할 것 같다.

철학은 자기철학이다. 자기를 사색의 대상으로 삼고서, 그 내적 고백을 토해내는 것, 그것이 철학이라는 말이다. 철학은 거기까지 나아가야 한다. 저자는 첫 번째 글에서 자기에 대해서 말한다. 그의 모든 작업에 일관되게 적용되는 사상적 토대를 드러내는 것이다.‘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라는 제목만으로, 우리는 그가 사이드를 스승으로 삼는다는 것, 더 나아가서 그 사이드가 스승으로 삼은 푸코를 스승으로 삼는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푸코 앞에 베버를 놓고 있음에 나는 놀란다. 베버는 합리성의 근대를 추구한 사회과학자 아니던가.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것만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베버는 기회 있을 때마다 익명의 다양하고 상호교차하는 미시권력의 계층질서 속에 개개인이 유순하게 배분되고 영속적으로 편입되어 가는 모습을 염세적으로 그려 보이는데, 그 이야기는 어딘가 수도원의 폐쇄된 사제실이나 감옥을 연상시키는 것이었다.”(p.36) 폐쇄된 감옥의 이미지에서 우리는 푸코를 떠올릴 수 있는데, 그런 점에서 푸코 앞에 베버를 놓는 저자의 관점은 우리의 눈을 좀더 넓게 띄워준다. 실제, 그 자신의 편력은 ‘베버 → 푸코 → 사이드’의 길을 따라서 이루어졌다 한다.

책 여백에 불교학에도 받아들여야 할 여러 가지 입장들을 적어놓았다. 그 중에 하나 : “종학(宗學)의 문제 = 권력의 지식화, 지식의 권력화.” 종학은 종파의 학문이라는 말이다. 자기 종파를 선양하기 위한 목적의식에서 행해지는 학문이라는 뜻인데, “푸코에 의하면 모든 지식의 발전이 권력의 행사와 떨어지기 힘들 정도로 굳게 연관되어 있고”(p.59), “권력이 그 나름의 지식을 산출한다”(p.72)면, 종학에는 객관적 보편성이나 종파적 이해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게 된다. 그런 까닭에 종학은 불교교단이 권력다툼에 매몰되는 것을 막아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칫 방조까지 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게 된다. 종학을 넘어서 불교학으로 나아가야 할 이유이다.

원서보다 더 뛰어난 번역서가 있을까? 있다.

이 책이 바로 그렇다. 원서에 없는 ‘보론 : 내적 국경과 래디컬 데모크러시 ― 재일(在日)의 시점에서 ―’라는, 일본사회 안에서 저자의 고뇌와 입장이 담겨져 있는 글이 덧보태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충실한 ‘옮긴이 주’까지 있기 때문이다. 임성모 선생이 번역한 ‘번역과 일본의 근대’(이산) 역시 원서보다 더 우수한 번역서였다. 모두 일본어 번역을 뜻하는 후학들이 전범으로 삼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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