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식
사범대학 교육학과 교수
이번 수시 2학기 전형에서 고려대가 내신 성적이 좋은 일반고 수험생들을 대거 탈락시키고 내신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외고 등 특목고 학생들을 대거 합격시킴으로써 사실상 ‘고교등급제’를 적용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실지로 학생부 성적 기준으로 교과 90%, 비(非)교과 10%를 적용하여 심지어 15~17배수를 뽑는 1단계 전형에서 233명 정원의 모 외고출신 수험생 중 153명이 합격한 반면, 서울시내 일반고 출신의 내신 평균 1.8~2.1등급의 지원 학생 90명 중에서 70명이 떨어졌다는 소식은 충분한 해명을 요한다.

고려대의 ‘고교등급제’ 의혹은 일차적으로 내신등급 산출방식을 공개하지 않은 데에 있다. 고교 내신 성적에서 표준편차를 고려하여 등급을 조정하기 위해 다른 대부분의 대학들은 이른바 ‘Z값 방식’을 사용하는데, 고려대는 3단계에서 비공개 변수 ‘K값’이라는 ‘독특한’ 산출방식을 사용한다. 그래서 교과영역 반영비율을 크게 낮추고 수치화하기 힘든 비교과 영역 10%를 기준으로 선발하는 편법을 썼다는 비난이 제기되고 있다. 요컨대 비교과영역에서 특목고 학생들에게 유리한 외국어 점수 등을 우선 반영했다는 추측이다.

예견된 고교등급제

어떤 의미에서 이번 ‘고교등급제 의혹’은 충분히 예견되던 일이다. 작년에 고려대는 ‘차등내신제’라는 자체 내신산출 방안을 적용하여 이미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당시 고려대는, 변별력을 확보하기 위해 점수가 비슷하게 분포되어 있는 학교 출신의 학생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묘안을 짜냈다. 구체적으로 학생들의 점수 차가 큰 학교는 그대로 두는 대신에, 점수 차가 작은 학교에서 상위 등급을 받은 학생의 내신은 낮추고 하위등급의 내신을 올리는 방안이었다. 논란이 되자 교육부는, 고등학교 자체의 학력등급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의 적용방법을 바꾸는 것에 불과하므로 고교등급제가 아니라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그 해석이 타당했는가에 대한 검토는 차치하고, 고려대 나름대로 의도를 해석하자면 다음과 같다. 내신의 ‘데이터를 조정’하면서 불이익을 받게 되는 학교는 대체로 입시성적이 우수한 학교 아니면 ‘변두리 학교’일 것이다. 여기서 후자는 수능등급에서 걸러질 것이므로 자연스럽게 탈락하지만, 서울 8학군과 지방에 위치한 일부 ‘입시 명문고’가 문제가 된다. 고려대는 일반고를 포기하고 특목고를 우선하는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따라서 이번에도 강남의 일부 학교가 불이익을 받았다는 불만이 있었다.

고교등급제의 문제

고려대의 ‘고교등급제 논란’이 이른바 상위권 대학들의 욕망을 대표한다고 본다면, 비난의 화살을 고려대에만 돌리는 것은 지나친 처사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우수학생 확보전략은 모든 대학의 입시전형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또한 대입 자율화 방침으로 개별 대학의 입시전형에 대해 정부가 제재할 수단도 사라진 이 마당에, 모든 대학들이 내신을 대체할 새로운 입시전형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어찌 ‘불온한 꿈’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학 입시자율화 이후 대학이 자체적으로 마련한 입시전형이 교육공중(敎育公衆)에게 확고한 정당성을 제공해주어야 한다는 점에서 고려대는 분명히 잘못을 범했다.

고려대 입시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고교등급제’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고려대의 수시 2학기 일반전형이 특목고 학생들에게 불리할 것으로 처음부터 예상되었다. 그렇다면 고려대는 입학 전형비율을 미리 조정했어야 했다. 고려대 입학 당국은 수험생과 학부모 집단이 요구하는 ‘객관적인 평가의 근거자료’를 마련하는 데에 소홀했든가, 아니면 교육수요자들에게 거만한 자세를 가졌다는 비난은 면할 길 없다. 물론 원칙적으로 학생을 뽑는 권한은 대학의 몫이지만, 입시과열 현상은 이러한 원론을 쉽게 무너뜨리고 있다.

학생의 창의력과 같은 고차원의 능력을 검사하는 논술이 사라지고, ‘객관적인 평가’라는 명목 하에 ‘액자 형태의 파편화된 논술시험’을 치르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대학 나름의 입시전형이 학부모 집단의 동의를 초월할 정도로 절대적인 자율성을 누릴 수 없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둘째, 고려대의 ‘고교등급제’ 의혹에 대해 10월 27일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가 진상 조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박종렬 대교협 사무총장은 “고려대 쪽의 해명서를 받아본 뒤 불분명하거나 적절치 않다고 판단되면 별도의 조사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다”고 밝혔다.(한겨레 10월 27일자) 대교협이 2010학년도까지 ‘3불’(△기여입학제 △고교등급제 △본고사 금지)을 유지하기로 한 바 있어서, 이러한 대응은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현 정부는 대학 자율화를 천명하면서 대학 행정의 가이드라인을 대학협의체 기구인 대교협에 대폭 이양했다. 고려대의 경우처럼 법적, 행정적 공백으로 인한 부작용들은 앞으로도 빈번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대학정책이 순탄한 길을 걷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교육의 본질 고민 필요

셋째, 고려대를 포함하여 우리 대학들이 입시에서 그토록 골몰하는 ‘변별력’이 어쩌면 교육의 본질을 외면한 것이 아닌지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 대학들은 잠재력 있는 학생들을 우수한 인재로 교육시킬 방안보다는, ‘이미 검증된’ 학생들을 확보하는 데에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그 이유는 대학들의 입시정책에서 궁극적인 목표가 대학서열구조에서 기득권 유지라는 데에 있다.

이러한 선발기준은 비교육적이다. 특히 학생의 가정배경이 대학입시 성공을 결정하는 요인이 되고 있는 현실 또한 방치할 수 없다.

이는 대학정책을 담당하는 정부 부서를 포함하여 대학공동체 모두가 심각히 고민해야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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