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유표
공과대학 전자공학과 부교수
 7년 전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농심에 입사했던 이 모군이 몇 달 전 연구실로 찾아 왔었습니다. 창립 기념일이라 회사가 쉬는 날이라서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러 학교에 왔다가 인사차 연구실에 들렀답니다. 마침 제가 급하게 보낼 이메일 몇 통이 있어 잠시만 기다려 달라 했더니, 머리를 긁적이며 교수님 책꽃이에 있는 책들 좀 둘러보아도 되겠냐기에 그리하라 고개를 끄덕이곤 이메일을 쓰면서 곁눈으로 슬쩍 뭘 하나 지켜 보았더니, 마치 요즘 교수님께선 어떤 공부를 하시나 감시라도 하러 온 수사관처럼 이 책 저 책을 부산히 뒤적이더군요.

 

농심에 취업한 제자

 대기업이기는 하지만 전자공학이 주 사업분야는 아닌 농심으로 취업 결정을 했을 때 일면 특이해 보여서 이 군에게 그 이유를 물었던 기억이 납니다.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자동 제어 분야에서 꿈을 펼쳐 보고 싶은데, 큰 식품 회사라면 음식 제조와 포장 일이 많을 터이니 자동화 관련해서 자신이 연구할 소재도 많고 기여할 수 있는 부분도 많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 그리 결정했다는 답이었습니다.

입사 이후 첫 스승의 날 즈음으로 기억이 되는데, 포부 실현은 잘 진행이 되고 있냐고 물었더니 일단은 공장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들께 귀여움을 받게 되었으니 1차 목표는 달성한 셈이라 하더군요. 자동화 기기 연구와 아주머니들이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을까 고개를 갸우뚱 거렸습니다.

 

현장에서의 배움

 기존 상품 제조 및 포장 관련 애로 사항이나 개선 사항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정말 쓸모 있는 자동화 기기 연구 개발은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니, 현장에서 직접 그 일을 맡고 계시는 아주머니들과 친해져야 겠다 결심을 하게 되었고, 그래서 아주머니들 뵐 때는 상사께 인사드릴 때 보다도 더욱 깍듯이 인사드리고, 짬 날 때마다 공장으로 달려가 잔심부름도 열심히 해 드렸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로부터 몇 해가 지나 이 군으로부터 농심 마크가 찍힌 상장을 스캔 한 파일이 첨부된 이메일이 날라 왔습니다. 회사에 크게 기여한 사원에 대한 포상 제도가 있었는데 거기서 대상을 수상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고가의 외산 자동화 기기가 사용되고 있는 분야가 있기에 자신이 한 번 자체 개발을 해 보겠노라 용기를 내어 의견을 냈더니 크지는 않지만 얼마간의 연구비를 지원받게 되어, 맨 바닥에서부터 몇 년간을 고생한 끝에 결국은 외산 기기처럼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제법 근사한 수준의 국산화 기기 개발에 성공을 해 냈던 것이었습니다.

 

기대되는 제자

 몇 달 전 그 날은 자신이 그동안 연구 개발하였던 기기의 첨단화를 위해 계속 고심하던 중, 기본적인 이론을 되짚어 볼 필요를 계속 느껴 오다가, 마침 휴일을 얻어 맘먹고 책을 보려 학교 도서관을 찾았던 것이었습니다.

전자공학 분야가 워낙 광범위 한 지라 분야가 많이 다른 저는 별 도움을 줄 게 없어 많이 미안했었습니다.

재학 시절에는 운동을 좋아해서 육체미 선수 못지 않은 근육남이었는데, 그 날은 흰 머리도 간혹 눈에 띄고, 근육은커녕 오히려 배가 좀 나온 듯 하여 안쓰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지만, 우리나라의 진정한 버팀목은 이러한 친구들이 아닌가 싶어 너무도 장하고 든든했습니다.

날씨가 갑자기 쌀쌀해 졌습니다. 이제 곧 겨울이 되면 이 군을 아끼시는 아주머니께서 챙겨주셨을 갓 뽑은 라면과 건강한 웃음을 잔뜩 쌓 가지고 송년 소주 한 잔 하러 찾아 올 이 군이 기다려집니다. 과연 이 군이 그 얄미운 고가 외산 기기를 밀어 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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