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민속학’은 그 사전적 의미가 말해주듯, 민간 생활과 결부된 신앙, 습관, 풍속, 전설, 기술, 전승 문화 따위를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을 가리킨다.

영국을 중심으로 한 라틴계 나라들의 포크로어(folk-lore), 독일을 중심으로 한 튜턴계 나라들의 폴크스쿤데(Volkskunde), 그리고 일본을 중심으로 한 동양에서의 민속학(民俗學) 등 각각의 나라와 문화권에 따라 그 연구 대상과 방법에서 다소간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민속학이라는 개념과 그에 대한 인식은 이 사전적 정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에서 민속학이 식민지 시기에 발생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것이 제국 일본 학지(學知)의 자장 속에 놓여 있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즉, 식민지 ‘조선민속학’의 발생과 전개 과정 속에 그와 관련된 제국 일본의 식민지 정책, 일본인 학자들의 민속학적 자료 조사 활동 등이 어떻게 관여했는가를 감안해야 한다. 그래야만 근대 한국 민속학을 둘러싼 식민지주의와 민족주의의 복잡다기한 관계를 해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식민지주의에 복무한 일본인의 조선민속학 대 문화민족주의에 기초한 한국인의 조선민속학이라는 이분법적 도식을 지양하고, 새로운 자료의 발굴과 실증적 검토를 통해 식민지 정책의 실천적 맥락에서 조선민속학의 정치성과 사상성의 변화를 고찰한 남근우의 ‘조선민속학과 식민주의’는 흥미롭다.

저자는 송석하의 ‘실천적 문화민족주의’와 손진태의 ‘민족문화론’을 각각 제국 일본의 식민지주의 및 만선사학과의 관계 속에서 재고하는 한편, 식민지주의 조선민속학의 성립 과정과 식민지 정책 사이의 연관성 및 조선민속학회의 창립 과정과 활동 내용 등을 세밀하게 추적하는 것을 통해 조선민속학의 정치성과 사상성의 변화를 명료히 보여준다.

이는 현재의 시점에서 한국 민속학의 개념, 인식, 범주 등의 기원을 되묻는 것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식민지 조선의 학지 발생의 한 측면을 고찰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작업이다.

오태영

동국대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전례없이 식민지 시대에 대한 연구가 활성화된 오늘날에도 1910년대는 일반인들에게는 물론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그다지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던, 그야말로 흔치않은 전인미답의 영역으로 남아있었다고 할 수 있다. 대개 근대계몽기의 역동적인 변혁과 자강에의 에너지가 외압에 의해 소멸된 이후, 혹은 식민지라는 암울한 단계로 이제 막 진입했을 뿐 3·1운동에 의한 대대적인 민족적 각성이 미처 분출되기 이전의 시기로만 간주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른바 1910년의 한일합방과 1919년의 3·1운동의 사이로서만 규정되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다시 말해 1910년대는 독자적인 시대적 특성을 갖고 있지 못한, 오로지 한일합방의 연장선상에서, 혹은 3·1운동의 전사(前史)로서 다루어져 왔다는 뜻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신소설과 번안소설의 전성기도, 이광수의 ‘무정’이 저술된 것도, ‘소년’과 ‘청춘’ 같은 잡지가 널리 읽혔던 것도, 신연극이 도입된 것도 모두 1910년대의 일이다. 그 문화적 융성의 배경에 식민지 초기의 유례없는 활력이 자리 잡고 있었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권보드래의 ‘1910년대, 풍문의 시대를 읽다’는 바로 그 활력에 대한 주목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는 저서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이것은 1910년대 ‘매일신보’에 게재된 방대한 분량의 기사들을 꼼꼼히 검토한 후, ‘불안하고 평온한 일상’, ‘사회와 개인의 감각’ ‘불만, 소요, 저항’이라는 3가지 키워드에 따라 분류하고 선별하여 자료집으로 묶고 주제별로 해설을 덧붙인 인문학 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대학생들에게도 흥미롭게 다가올 법한 당대의 사건, 사고의 사례들이 풍부하게 수록되어 있다. 그러한 검토를 통해 이른바 우리가 영위하고 있는 일상에 대한 감각들이 과연 어떤 시대로부터 비롯되어 왔는지 그 생생한 연원을 추적 가능하도록 만들어준다. 그러면서 이 책은 우리가 암흑의 이면으로 덮어왔던 1910년대의 삶이 기실 근대 문학과 문화의 생성을 가능하게 할 정도로 대단히 활력 넘치는 것이었음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도록 하는 흔치않은 저서에 해당한다.

조형래

문화평론가, 동국대 강사

 

삶을 도무지 예전과 같지 않다고 느끼게 되는 순간, 익숙하다 여긴 일상의 삶을 돌연 가장 낯선 것으로 대면하게 되는 순간은 그러나 실은,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진실로 알게 되는 때인지도 모른다. 그러한 경험은 유독 개인만이 아니라 가족, 국가, 민족과 같이 집단 주체에 관해서도 진실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컨대 민족정체성은 그것을 둘러싼 담론과 제도와 표상의 복잡한 내연관계 속에서 만들어지고 공고해진다. 우리가 지금껏 “민족문화의 연원(淵源)”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찬란한” 문화유산의 증거들은 대개 저절로 주어진 것이라기보다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이데올로기에 의해 새롭게 고안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이를테면 ‘신라’는 유구한 세월 동안 그 자리에 그렇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현재’의 요구에 의해 늘 ‘발견’되어온 어떤 것이다. ‘신라’를 둘러싼 역사적 왜곡과 이데올로기의 허위를 걷어낼 때 우리가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신라’는 이미 ‘신라’가 아니다. 최근 출간된 '신라의 발견'은 현재 우리가 고수하거나 오해하기 쉬운 민족문화의 통념들에 대해 흥미로운 재해석을 보여준다. 민족문화의 성지(聖地)인 ‘신라’는 왜 일본인 학자들에 의해 발굴되고 고평되어야 했을까, 식민지기 소설들이 끊임없이 ‘신라’를 이야기하고 재현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해방 이후 새로운 국민국가 건설기에 왜 ‘화랑(花郞)’의 이미지는 각광을 받았던 것일까. 이 책에 수록된 10편의 논문들은 이러한 종류의 질문들에 답변하는 사이에, 현재 우리의 의식과 사고 속에 공고하게 자리잡은 ‘신라’라는 관념, 이미지가 허구적 상상이나 역사적 구성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일깨워준다. 그것은 어쩌면 한민족을 불멸의 민족으로 ‘기억’하는 것보다 더 우리의 사고와 인식의 지평을 풍요롭게 열어놓을 것이다. '신라의 발견'은 문화적 상징, 설화, 교훈, 교과서, 시가, 심지어는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근대 한국문화의 각종 ‘신라’ 표상에 내재된 어떤 정치적, 사회적 권력의 실체를 확인하려는 지적 호기심을 지닌 독자라면 충분히 일독할 만한 가치를 지닌 책이다.

이철호

한국문학연구소 전임연구원

 

본교 사학과 양홍석 교수는 이 저서에서 19세기 미국서부를 활극형태로 문화상품화 한 버팔로 빌 코디(Buffalo Bill Cody)의 와일드 웨스트 쇼(Wild West Show)의 내용과 그 역사적 의미를 다루고 있다.

총 2부로 구성된 이 저서의 1부는 주로 버팔로 빌 코디의 성장과정과 와일드 웨스트 쇼가 탄생하게 된 당대의 미국 문화를 소개하고, 2부는 이 활극이 어떻게 유럽에서 공연되고 그럼으로써 유럽인들로 하여금 미국의 서부에 대한 시선을 편향되게 고정시키는 역할을 하였는지를 소개한다.

활극의 내용은 주로 서부에 사는 인디언들이 얼마나 야만적이고 포악하며 도대체 문명인으로 개조하기에는 너무나 불가능한 존재라는 사실이다. 활극 속의 인디언들은 농사를 짓기 위해 정착한 백인가족을 몰살하거나 아름다운 백인 여성을 납치하고 백인들의 마차를 습격하여 재산을 훔치는 그야말로 극악무도한 야만인들이다. 문명의 전도사인 백인이 인디언에게 살해당하기 직전 어디서 나팔소리와 함께 구세주처럼 등장한 버팔로 빌 코디가 인디언을 혼내는 장면은 이 활극의 백미이다.

이렇게 재미있는 볼거리를 19세기 미국 동부와 유럽에 선사한 이 활극이 심각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핵심요지이다. 한 번도 서부에 가 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 활극의 내용을 단순한 재미거리로 생각하지 않고 실제 서부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는 착각을 함으로써, 사실적인 서부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상상의 지리학”을 창조한다는 것이다. 그 후유증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가장 직접적인 피해자는 아메리카 인디언으로, 이 활극으로 말미암아 백인기병대는 인디언을 제거하는 명분을 얻음으로써 더욱더 사명감을 가지고 인디안 학살을 자행하게 되었다.

나아가, 이 활극은 유럽인들이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문명화시킨다는 교조 하에 자신들의 제국주의적 음모를 드러내 놓고 자행하도록 도와준 이데올로기를 제공하였다.

노헌균

문과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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