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학인들은 요즈음 미국발 금융위기에 관련한 여러 가지 소식을 들으면서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다. 미국 FRB의 전 의장이었던 그린스펀 씨의 말을 빌자면 한 세기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대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대학은 외견상 조용하기만 하다. 사실 미국발 금융위기는 지난해 여름부터 몇몇 비우량 주택담보대출(Subprime Mortgage Loan)기업들의 부도로부터 시작하여 결국 금융위기 도미노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9월초부터 환율이 급등하고 증권시장에는 외국투자자들의 대탈주를 예견하는 흉흉한 소문이 난무하였다. 다행히도 소문과는 달리 9월 11일 부근에 만기가 몰려있던 국채가 무사히 차환되면서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금융시장의 상황은 추석을 지나 더욱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미국 4위의 투자은행인 리먼브라더스가 파산신청을 하고 3위의 투자은행인 메릴린치가 BOA에 인수되는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여기에 세계 제1위의 보험사라는 AIG가 전격적으로 구제금융을 신청하였으며, 패니메와 프레디맥이라는 국영채권보증기관들에 공적자금이 투입된다는 뉴스를 접하고 경악을 금치 못하게 되었다.

1997년의 암울했던 기억

그러면 미국에서 발생한 이러한 금융위기는 우리와 관련이 없는 강 건너의 불일까? 불행히도 필자에게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필자는 1997년 겨울의 암울했던 기억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IMF외환위기로 인하여 많은 졸업생들은 원하는 직장을 찾지 못하고 방황했으며, 동양적인 예절로 매년 열려온 사은회마저 어느 사이에 조용히 사라지는 등 대학도 경제위기의 직격탄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이후 수년간의 졸업생들은 경제적 독립이 늦어져 나이 삼십을 훌쩍 넘기고도 결혼을 하지 못하는 일이 흔해졌다. 학생들은 모래알 같이 흩어져 더욱 개인주의화하고 대학사회에도 경제위기 직후 불기 시작한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적자생존과 무한경쟁의 회오리가 몰아 닥쳤다. 우리 대학구성원들은 마땅히 거쳤어야 할 신조류에 대한 비판과 천착 없이 그저 대세를 따라가기에 급급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 10년여 만에 또다시 눈앞에 닥친 경제위기에 직면하여 대학인들은 무엇을 준비하고 실행하여야 할 것인가? 필자는 이와 관련하여 두 가지를 언급하고자 한다.

대학 경쟁력 강화 절실

첫째, 별로 참신하게 들리지 않을지 모르지만 예의 실력배양론이다. 앞으로 졸업생들의 취업상황이 더욱 어려워 질 것이 불 보듯 하므로 교수들은 학생들의 교육에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외국어와 전공지식 뿐만 아니라 우리 졸업생들이 사회에 나가서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창조적 사고력과 문제해결능력을 배양하는데 필요한 교육의 내용과 질을 어떻게 준비하여야 할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여야 한다고 본다. 그동안 정부 주도로 또는 학교 당국의 주도로 교육개혁을 위한 여러 가지 시도가 있었지만 우리 대학의 교육의 질이 획기적으로 향상되었다는 평가는 드물다. 이 문제는 더 이상 정부나 대학의 이사진 또는 대학당국이 해답을 찾아줄 수도 없고, 다양한 전공에 대해 깊은 지식이 없는 외부인들이 좌지우지 해서 해결될 일도 아니다.

학문적 식민주의 개선 계기로

둘째, 우리 학교뿐만 아니라 국내 모든 대학들의 학풍이 바뀌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우리 대학구성원들은 미국에서 탄생한 신자유주의 사조가 미국발 금융위기를 계기로 그 치부를 드러내어 결정적인 위기에 처하는 모습을 지금 똑똑히 목도하고 있다. 이제 외국의 사조를 무비판적이고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소위 학문적 식민주의는 타파되어야 할 때가 되었다. 남이 만들어내고 제시한 idea에 무임승차만 해가지고는 더 이상 우리의 길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불필요하고 비생산적인 좌우논쟁을 중단하고 세계사의 도도한 조류에서 우리의 좌표를 찾고 어둠 속에서도 미래의 길을 밝히는 학문의 본원적인 기능이 복원되어야 한다. 깊어가는 이 가을에 우리 대학에도 진정한 학문의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기를 기대해 본다.

김 진 선
경영대학 회계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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