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훈 기자
나의 고향은 경남 남해다. 고향과 4시간 반을 떨어진 유학생에게 서울생활은 보고픔으로 제법 고달프다. 특히나 대학신문사라는 개미지옥에 들어간 나에게 고향땅 밟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일까. 몇 달 만에 만난 고향은 아들을 보고는 눈시울을 붉히는 어머니를 닮았다.

낯설게 들릴 지명만큼이나 남해는 때 묻지 않은 땅이다. 거친 콘크리트가 아니라 시원한 바닷바람이 기다려주는 섬이다. 고향을 찾을 때면 스스로 “난 정말 행운아다”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나의 고향 남해에 ‘조선소 조성’ 열풍이 불어닥쳤다. 내 고향 남해군은 2년 전부터 ‘조선산업단지’를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서면 노구마을 일대를 조선산업단지 예정지로 삼아 갯벌 매립 등을 국토해양부와 협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행정부의 추진계획보다 두려운 것은 바로 조선소 조성을 반기는 마을 주민들이었다.

고향 마을 곳곳에는 조선소 조성만이 지역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한 평생 흙을 일구며 땀에 대한 굳건한 믿음으로 살아온 이들의 모습이라고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도시로 떠난 우리가 자연 파괴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그들에게 전가할 수 있냐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그들은 우리가 도시로 떠난 후 외로이 남겨졌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농산물을 외면했다. 남아 있는 이들에게 고향의 ‘땅과 바다’는 의미를 잃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의 ‘무언의 종용’은 조선소를 추진하게 했다.

안타까운 것은 지역주민들이 생각하고 있는 개발을 통해 지역경제가 발전하리라는 개발의 논리다. 조선소가 지어지더라도 고향 주민들에게 어떤 경제적 보상이 이루어질 것인가 하는 염려에서다. 조선소 자체만 보더라도 이미 대기업이 들어와 투자하기로 예정돼 있다고 한다. 또한 조성 후에도 고령화비율이 높은 남해에 뚜렷한 고용창출효과가 있을지도 걱정스럽다. 밥상만 차려주고 밥은 못 먹는 꼴이 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드는 까닭이다. 우리는 그간 개발의 현장에서 돈 냄새를 맡고 득달같이 달려들었던 외지의 투기꾼들을 너무나 많이 목도해왔다.

그렇다면 우리의 고향은 어떤 옷을 입어야 할까. 개발의 논리가 아니라면 우리는 우리의 고향에 어떤 보상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일년내내 농사를 지어서 생산비도 건지지 못하는 농사라도 이유야 어찌됐건 지어야 한다고, 그래야 우리의 고향이지 않느냐고 한가로운 도시인의 고향사랑을 이야기 해야 할까.

그도 아니라면, 좀더 새로운 방식의 농사, 효율성을 극대화한 기업화된 기업농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설득해야 할까. 평균연령이 이미 60세를 넘어버린 늙은 고향앞에 시장주의의 날선 목소리를 들려주어야 할까.

우리들의 고향은 2004년 칠레와의 FTA, 2005년 추곡수매제 폐지 등으로 우리 농산물은 설자리를 잃은 곳에 위치해 있다. 그 사이 우리의 장바구니는 온통 외국 농산물로 채워졌다. 더구나 이렇게 수입에 의존한 농산물 시장은 이미 식량을 무기로한 식량민족주의로 변할 기미마저 보인다니 석유처럼 나라경제를 뒤흔들 수 있는 시대도 머지 않은 것 처럼 보인다.

더욱이 석유는 인간에게 도구적 역할에 불과하지만 식량은 인간의 생존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필수적인 재화이다. 농산물 시장을 놓고 개방을 이야기 할때 늘 등장하는 이야기이지만,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았던 최악의 사태마저 우려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들의 고향 농촌은 어떠한가. 이명박 정부는 추곡 수매제 대신 시행하고 있는 공공 비축제를 이번 해부터 더 축소하겠다는 방침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과연 산천을 파괴하면서 관광으로 수익을 올리는 대운하보다 우리 농산물을 지키는 일이 과소평가 받을 수 있는 일인지 의문이다.

정부가 농촌을 어떤 철학을 가지고 바라보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고유가와 바이오에너지 활용에 따른 곡물가 폭등으로 이제 우리의 식량상황도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거기에 EU, 일본과의 FTA가 예정되어 있다. 미국과의 FTA도 의회의 비준을 받으면 이제 농촌은 그야말로 붕괴에 이를지 모른다.

물론 농촌 사회내부의 변화도 필요할 것이다. 외국 농산물과의 경쟁도 불가피하다는 걸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농촌에 경쟁력을 불어 넣어주기 위해 국가는 아니 우리는 무엇을 했던가.

내고향 남해에는 다랭이 논이라는 것이 있다. 다랭이 논은 산지가 많은 땅을 개간해 비탈진 산에 계단식 논을 만들어 놓은  것을 말한다. 남해는 산이 많아 대부분의 논이 다랭이 논이다. 예전에는 다랭이 논 마다 벼를 재배했다. 다랭이 논이 구경거리가 되기도 했다. 지자체에서도 다랭이논을 관광상품화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점점 농사를 짓지 않는 다랭이 논이 늘고 있다. 한 뼘의 땅이라도 더 농사짓기 위해 개간했던 다랭이 논이 이제 다시 불모지로 버려지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고향마을을 나서며 본 플래카드의 “남해의 마지막 희망은 조선산업단지 조성입니다”라는 문구가 여전히 가슴을 저민다. 내 고향의 마지막 희망이 조선소가 아니라 고향의 흙과 바람이며 동시에 ‘우리’가 됐으면 한다.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