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화의 추억, 세운상가를 찾다

철거가 예정된 세운상사 현대아파트
오늘은 세운상가를 따라 걸어 ‘세운상가를 걷다’전시에 방문해 보자. 도심 녹지화 계획으로 철거 대상이 된 세운상가 현대아파트에서 서울 한복판에서 시작된 근대화의 추억을 되짚는 현장 기록전 ‘세운상가를 걷다’가 오는 2일까지 진행된다. 이는 시민단체 문화우리가 주관하며, 철거로 인해 이사를 한 현대아파트를 속속들이 뒤져 찾아낸 잔여 생활사 유물과 세운상가의 사진들을 전시한다. 철거가 이뤄지기 전, 처음이자 마지막의 전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세운상가 다큐멘터리를 상영하는 텔레비전

세운상가는 세상의 기운이 모인다는 뜻으로, 1968년 김수근의 설계와 대기업의 시공, 김현옥 당시 서울시장의 추진력으로 태어난 직선 1km에 이르는 세운, 대림, 삼풍, 진양상가 군을 통칭한다. 원래 이곳은 1930년대 경성시가지 계획법에 의해 필지가 형성됐다. 해방이후에는 해방촌이 되고 윤락가로 슬럼화 됐고 이를 타파하기 위해 세운상가가 지어지게 됐다.

세운상가는 최초의 도시개발계획에 의해 조성됐고 한국 전자제품 산업의 기원이자 1970년대 최고급 아파트이며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 건물이었다. 또, 한국 최초로 중앙난방과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었던 곳이다. 그러나 지어진 지 10여년 만에 강남개발정책과 주위의 상권 발달로 그 빛을 잃어갔다. 세운상가에는 오늘도 물건들이 오고가고 있지만 점점 근대화의 유물로만 남아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어 보였다.
세운상가는 우리학교 건물 옥상에서 충무로 방향으로 내려다보면 그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얼추 파악이 끝나면 건물만 따라가면 된다. 건축가 김수근은 당시 1층은 차도로만 사용하고 2층에 실내와 실내를 오르내리며 가는 공중 통행로인 ‘데크’를 설치했다. 이는 현재 끊긴 부분도 있지만 아직도 가장 쉽게 세운상가를 답사할 수 있는 길이 돼 주고 있다. 이제  탁 트인 옥상에서 이들의 기억과 흔적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자신을 안내하는 세운상가의 ‘데크’를 따라 가자.
 

우리학교 옥상에서 보이는 진양, 삼풍, 대림상가
step 1. 진양상가
학교에서 내려오면 세운상가에서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건물이 진양상가다. 꽃가게와 애견용품, 그리고 집에 못간 학생들이 자주 찾는 찜질방까지, 우리학교 학생들에게는 익숙한 건물이다. 그런데, 오래됐지만 깨끗한 정면모습을 비껴나가면 또 다른 모습이 굉장히 새삼스럽다. 창문마다 장식된 차양들은 때 묻고 바래 있고 건물 정면 방향에 붐비는 사람들과 비교해 놀랍도록 조용하다.

세운상가에서 바라본 종로의 풍경

step 2. 삼풍상가와 대림상가
진양상가를 지나면 깨끗한 건물이 등장한다. 이 삼풍상가는 데크도 설치되어 있지 않다. 세운상가의 건물들 중 유일하게 리노베이션을 했기 때문이다. 다시 한 도로만 건너면 대림상가가 다시 진양상가와 유사한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다. 옥상외벽에 치장한 디자인이 눈에 띈다. 70년대 이전의 건물에서 나타나는 외벽 꾸미기 방식이라고 한다.

step 3. 세운상가
대림상가와 세운상가가 마주보는 가운데에는 청계천이 흐르고 있다. 그 가운데 ‘솟대’라는 조형물이 서 있고 밤마다 빛을 발하고 있다. 세운상가 본관의 입구 쪽에는 조명기기 판매가 특히 많았다. 본관의 내부는 한가운데를 비워 채광을 하는 서구에서 유행하던 건축양식이 적용되어 있었고 현대아파트와의 옥상에는 정원도 마련돼 있다. 세운상가에서 진양상가 쪽을 바라보면 종묘에서 남산까지, 한 길로 연결하려던 건축가 김수근의 의도가 무엇인지 추측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생활사전에 전시된 1980년대 여성지

step 4. c t, 세운상가를 걷다.
Cityscape trust. 시민단체 문화우리가 2006년도부터 시작한 프로젝트다. 그들은 멸실되어가는 ‘근현대 도시경관’을 ‘기록’이라는 과정으로 재조명 하고자 한다. 이번 전시는 그 셋째 이야기로 당시 매우 고급이었을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 7호로 올라가면 만날 수 있다.
전시가 진행되는 707호는 주인아주머니가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 나간, 40여 년간 주거공간으로 쓰였던 28평의 가정집이다.

모든 물건을 빠짐없이 모으는 성격 이였다는 할머니가 모아놓은 몇 십 년 치의 종이가방은 이번 전시에 큰 도움이 됐다. 1003, 905, 810, 7207호에서 찾아낸 생활사 유물들은 입구 바로 앞의 식모방과 작은방을 합친 방에서 생활의 흔적을 보여주는 생활사전으로 구성됐다. 이 방의 물건들은 직접 만져볼 수도 있다.
일본식 화장실에서는 세운상가의 24시간을 보여준다. 철거가 예정됐어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의도가 담겨있다. 창고자리에서는 세운상가 상인들의 인터뷰를 통해 지난 40년을 들어 볼 수 있다. 작은방에서는 2005년 미술인회의가 주최한 세운상가 프로젝트 때 작업된 이현지 제작의 다큐멘터리가 상영된다. 재개발에 대한 상인들의 솔직한 이야기가 생생하게 보여진다. 

거실 벽면의 곳곳에는 22명의 자원 활동가들이 기록한 세운상가 곳곳의 사진이 전시되며 안방에서는 명예 자원 활동가로 참여한 배우 조민기와 개그맨 이병진의 사진이 전시된다. 세운상가를 다양한 시각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또한 다음달 25일에는 인사아트센터에서 세 번에 걸친 전시를 보완해 다시한번 전시회를 가질 것이라고 하니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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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운상가에서 바라본 종묘
tep 5. 14층 옥상에서

전시를 둘러보고 나면 14층 옥상으로 올라가는 것을 추천한다. 간판 때문에 복잡한 관문을 거치고 나면 종로 주변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특히 종묘를 바라보면 세운상가가 세워졌을 당시 얼마나 조망권이 좋았을지 상상된다. 하지만 다른 방향에서는 슬레이트지붕의 건물들이 빽빽하다. 세운상가와 함께 지난 40여 년간 거의 변화가 없었던 것이다.

옥상정리를 하며 이사할 채비를 분주히 하고 있던 1302호의 노부부는 삼십년간 이곳에 살아왔다고한다. “떠나기 싫어, 하지만 어쩌겠어? 나라가 하는 일을”이라며 한숨을 쉰다.
79가구 중에 현재 사무실까지 20여 가구만 남아 정리중이라는 현대아파트는 아래층의 상가와는 완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문화우리 연구개발팀 김아영 팀장은 “대부분 이사를 갔지만 상인들 중 철거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분도 있다”며 현재의 상황을 귀띔 해줬다.

서울의 근대화를 화려하게 알린 세운상가, 하지만 그 급한 마음은 몇 십 년 후를 내다보지 못했다. 지금 세운상가는, 서울은 그 여파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중이다. 이번에는 앞뒤를 두루 둘러보는 통찰력이 필요하지 않겠냐고 세운상가가 말하고 있었다.  

사진 = 이정훈 객원기자, 문화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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