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 어른들만, 그것도 힘들게만 하는 것?!

박주민 변호사
2002년 월드컵, 거리는 붉은 옷으로 넘쳐났다. 남녀노소할 것 없이 모두 붉은 옷으로 갈아입고 거리에 나와 한 마음 한 뜻으로 구호를 외쳤다.

거리에 나온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이 바로 중고등학생들이었다. 그들은 어린 나이였지만 자신들의 의사대로, 자신들의 감정대로 거리에 나왔던 것이다.

그런데 만일 그 때 어느 중앙일간지에서 ‘뭔가 이상하다. 어린 학생들이 모종의 세력에 의해 휩쓸리고 있다. 평상시 K리그를 봐라! 관중도 없고 썰렁하기 그지 없지 않느냐? 그렇게 축구에 관심이 없던 아이들이 축구에 흥분하고 있는 것은 뭔가 음모가 있는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지 않겠냐’는 취지의 사설을 쓴다면 어떨까? 그리고 그에 덧붙여서 교사들이 학생들로 하여금 거리에 나서지 못하도록 지도, 감독하여야 한다는 주장까지 한다면…….

붉은악마와 촛불집회

요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놓고 많은 논란이 일고 있고, 그 가운데 많은 어린 학생들이 미국산쇠고기의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많은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판단력이 미숙한 어린 학생들이 무엇인가에 휩씁리고 있다’고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배후로 전교조를 들기도 하고 일부 사회단체를 거명하기도 한다. 심지어 자신의 견해를 표명한 연예인들을 비난하고 나서기도 한다.

이러한 언론들의 눈에는 2002년의 학생들과 지금의 학생들이 다르게 보이는 것일까? 아니면 축구는 쉽지만, 무역은 어려우니 학생들이 이해도 하지 못하면서 나서는 것은 이상하다고 여기는 것일까? 그렇다면 언론들이 보는 학생들은 축구를 보고 흥분하는 수준의 지적능력만을 갖춘 존재인가? 아니면 우려하는 언론이야 말로 뭔가 의도가 있고, 휩쓸려고 하는 것인가? 많은 것이 의아하지만 지금은 제대로 알기 어려울 뿐이다.

야간집회는 무조건 불법?

이런 논의가 촉발된 데는 ‘야간의 촛불집회가 과연 불법집회냐’하는 문제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경찰이 촛불집회를 불법집회로 규정하고, 참여한 사람들을 처벌하겠다고 했을 때 자신들의 상식을 의심했었다고 한다.

자신들이 상식으로 알기에는 불법집회라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고, 폭력적인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정작 자신들이 참여해서 자신들이 부르고 싶은 노래를 부르며 대중들과 대화를 시도했던 평화적인 촛불집회 역시 불법집회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던 것이다. 내가 범법자가 되다니?! 그것도 이렇게 간단하게!

위헌적인, 그러나 위력적인

하도 여러 번 이야기하고 글을 써서 이제는 나조차 지겨운 이야기가 있다. 바로 헌법은 집회의 자유를 국민의 중요한 기본권으로 규정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집회에 대한 허가제(원칙적 금지, 예외적 허가)를 금지하고 있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행 집시법은 야간집회의 경우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바로 헌법에 배치되는 것이다.

여기에 거의 괴담수준의 사실이 더해진다. 바로 집회를 다루는 집시법에 집회의 개념에 대한 규정이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경찰의 입맛대로 어떤 것이든 집회로 둔갑할 수 있고, 최근의 촛불집회 역시 아무리 문화제라 해도 경찰이 집회라고 보는 순간 집회일 뿐이다.
이렇게 일단 경찰이 집회로 보는 이상 집회신고 등 모든 절차를 거쳐야만 불법이라는 딱지를 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떤 법이 어떤 행위를 처벌하고자 하는 경우, 그 처벌대상이 되는 행위를 명확히 규정하고 있어야만 일반 국민들이 미리 자신의 행위에 대해 판단할 수 있고, 반대로 공권력은 함부로 행사되지 않게 된다.
이 때문에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은 명확해야만 한다. 그렇지 못한 법은 모두 위헌이다. 따라서 현행 집시법은 이런 관점에서도 위헌적이라고 할 것이다.
법이 헌법에 위배되는 순간 그 법은 법질서 속에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이러한 집시법이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여 많은 사람들의 입을 막으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 척도

요즘 현행 집시법과 현재 사회분위기를 주도하는 언론들이 그리는 사회는 어떤 사회일지 새삼스레 생각해보게 된다. 혹시 정치적 문제, 아니 식생활이나 국민의 건강이라는 생활적 문제에 대해서조차 침묵하고, 조용한 사회. 그래서 위에서 시키는 대로 드라이브를 거는 대로 움직이는 사회를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요즘 아이작 아사모프의 파이데이션이라는 소설을 재미있게 읽고 있다. 그 소설에는 거대한 제국이 멸망해 가는 징후로 아무도 문제제기하지 않는 것을 들고 있었다. 아무도 문제제기하지 않는 사회는 조용하고 잘 지내는 것이 아니라 바로 정체하고, 퇴보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민주주의 사회가 다른 사회제도보다 뛰어난 점이 있다면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훨씬 편하고 자유롭게 자신의 견해를 표출할 수 있고, 그렇게 표출된 의견들이 사회적 결정에 보탬이 되어 보다 현명하고, 보다 정확한 결정을 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혹시 최근의 분위기는 이 사회가 가지고 있고, 또 가져야 하는 이런 장점을 사장시키는 쪽으로 흐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이 시점에서 사회의 발전을 위해 다시 한번 민주주의의 발전을, 그리고 그것을 위한 표현의 자유의 소중함을 새겨보았으면 한다. 그리고 주제넘은 잔소리일지는 몰라도 대학생들의 보다 많은 관심이 있었으면 한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바로 당신들이 이 사회의 주인이자, 대한민국의 국민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요즘 고등학생들이 많이 부르는 노래이다.

박 주 민
변호사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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