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가족과의 특별한 만남 - 4대째 본교와 인연맺은 이재창 이사 가족

왼쪽부터 심수진(일문1)양, 이선용(연영 91졸), 이재창(경제 55졸)법인이사, 이현정(언론정보대학원 05졸)동문
동국 100여년의 역사 속에 몇 대에 걸쳐 우리학교를 다닌 가족이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조계종 탄생의 산파역을 담당했고 초대 조계종 중앙총무원장을 역임한 이종욱(명진학교 1회 졸업) 전 동국대 이사장과 전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교수 이재창(경제학과 졸) 법인 이사 가족이다.

두 번에 걸쳐 우리학교 이사장을 지낸 고 이종욱 박사로 시작해 그의 아들 이재창 법인이사, 이재창 이사의 자녀들, 손녀까지 우리학교와 인연을 이어왔다. 끈끈이 이어온 학교와의 인연 덕분일까, 올해 우리학교에 입학한 심수진양 까지 4대에 걸친 동국가족에 이르게 되었다.

이종욱 박사의 직계 가족 이외에도 사촌과 외가를 합쳐 방계 가족까지 더하면 그 인연은 더욱 진해진다.
이종욱 박사로 시작돼 이재창 이사의 손녀인 심수진 양까지 총 12명이 우리학교를 거친 것이다. 이재창 이사는 “축구경기 할 때 한팀의 인원이 11명이던가? 우리 가족은 축구선수로 뛰고도 남겠구만”이라며 운을 뗐다.

100년을 거슬러 올라간 역사

이 가족이 동국대학교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10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승려였던 이종욱 박사는 조계종 사찰 몇 곳이 근대 불교 교육의 염원을 안고 만든 명진학교 1회 졸업생이다. 졸업 후, 독립운동의 일선에 뛰어 들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동하기도 했던 그는 독립 이후에 학교발전과 조계종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실제로 우리학교는 이종욱 박사 재임 때인 1953년에 종합대학으로 승격되었다.

이재창 이사는“아버지가 학교와 불교계 발전에 혼신을 다하셨다. 나 또한 그 영향으로 불교학문에 관심을 가지고 학교 일선에 뛰어 들어 활동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아버지의 대를 이어 한국전쟁의 피해가 채 가시지 않은 1955년도에 우리학교에 입학했다. “내가 막 학교를 입학했을 때는 당시 피난 교사였던 ‘대각사’에서 수업을 들었지”라며 “황희돈 교수, 서울대 총장을 지내기도 했던 신태환 교수 등 쟁쟁한 교수님들 밑에서 학문을 갈고 닦았다”고 말하며 그 시절을 회상한다. 졸업 후, 동대 불교대학원을 거쳐 우리학교 불교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는 학교 법인 이사로 학교 발전에 힘쓰고 있다.

세 남매의 학창시절

이재창 이사 슬하의 자녀들은 모두 우리학교를 졸업했다. 이현정(언론정보대학원 05졸) 동문, 이선용(연극영화 91졸) 동문, 고 이학용(전기공 83졸) 동문이 그 주인공이다.

70년대 후반에 입학한 고 이학용(전기공 83졸) 씨를 이어 동생인 이선용 동문은 200대 1의 경쟁을 뚫고 연극영화 수석으로 당당히 입학했다. 우리학교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에 대해 “연기자의 꿈을 갖고 연극학과로는 당대 최고인 우리학교로 지원했다”며 “지금은 유명한  한석규, 최민식 선배와 함께 동고동락 했었다”며 자랑스럽게 말한다.

그녀가 연극학과에 입학해 신고식을 치뤘을 때 당시 불교학과 교수였던 아버지(이재창 이사) 때문에 곤욕을 치뤘다고. 한 선배가 어떻게 알았는지, 신고식 도중 “너네 아버지가 불교학과 이재창 교수지, 너 아버지 빽으로 들어온거 아냐?”라고 말해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또한 재학시절 이재창 이사가 강의했던 기초교양 ‘불교문화사’ 수업을 필수로 수강을 해야 했다. 그녀 또한 이 수업을 수강했다는데, 다른 수업은 몰라도 아버지가 강의하는 수업이라 열심히 공부했단다. “시험기간에 아버지 차를 타고 학교에 오면서 ‘아빠, 시험에 뭐나와?’라고 물어도 절대 가르쳐 주지 않으셨던 기억이 난다”며 “고지식한 아버지를 둬서 시험에 덕 본 게 없다”며 웃는다.

그들이 대학을 다닌 7,80년대는 학교에서 최루탄과 화염병이 터지는 등 학생운동이 절정을 이뤘던 때다. 수업도중 교실 안으로 최루탄 연기가 들어오고 유리창이 깨져 깜짝 놀랐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선용 동문은 “학생운동에 참여하는 선배들도 있었지만, 대체로 우리과 학생들은 예술극장에 꼭꼭 숨어서 공연 준비나, 연기 연습을 했다”고 한다. 그는 학교 졸업 후 KBS 탤런트 공채14기로 합격해 연기생활과 라디오를 하다가 결혼 후 방송 생활은 접고, 현재는 남편 직장을 따라 중국 상해에서 살고 있다.

이현정 동문은 동양화를 전공한 뒤 국내외에서 작품전을 열었던 촉망받는 화가였다가, 결혼하면서 화가의 꿈을 접고 불교방송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아나운서로 활동하면서 언론공부를 심화시키기 위해 자연스럽게 우리학교 대학원으로 입학했다. 불교 방송에서 갈고 닦은 20여년 동안 아나운서 경력을 통해 생긴 노하우를 바탕으로 ‘5분 스피치에 내 모든 것을 걸어라’, ‘성공하는 스피치 돈 버는 스피치’ 등 스피치 관련된 저서를 출간하기도 했던 그녀는 현재 스피치 컨설턴트로 활약하고 있다.

그녀는 “적절한 상황에 알맞은 표현을 하는 ‘스피치’가 중요하다”며 “이는 불교를 포교 하는 데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기독교 커뮤니티가 우리 사회에서 크게 확장되어 있는 것도 전도 스피치의 영향이 컸다. “불교계도 스피치 기술을 바탕으로 포교에 힘쓴다면 불교 확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새로운 세대의 시작 심수진 양

마지막 4대의 방점을 찍은 심수진(일문1) 학생은 이현정 동문의 자녀로 올해 학교에 첫발을 딛었다. 이재창 이사는 “가족 중에 우리학교를 특별히 권한 사람도 없는데, 이 녀석도 피가 당겼는지 참 신기할 따름이지”라고 말한다. 심 양의 어머니인 이현정 동문은 우스갯 소리로 ‘동국대 동창회 만들 일 있냐’며 오히려 말렸다는데.

아직 소녀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듯이 보이는 그녀는 4대로 이어지는 동국가족이 아직은 크게 실감나지 않는다고 한다. “학교 입학 전부터 친지나 부모님을 통해 가족이 이어온 학교와의 인연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어요. 저 또한 그 인연에 동참해 신기하기도 해요”라며 쑥스럽게 웃는다.

학교를 향한 첫걸음을 막 뗀 심수진 양. “학교에 들어온 지 얼마 안됐지만 집안 어른들께 듣던 것보다 훨씬 학교 생활이 재밌어요”라고 말한다. 앞으로 그녀가 가족들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 있는 동악안에서 자신의 젊은 날을 어떻게 그려갈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애정만큼 커진 아쉬움

2년전의 100주년 기념을 맞아 열린 음악회를 보면서 학교의 오랜 전통을 새삼 실감했다는 이현정 동문은 반면에 이전에 명문 사학으로 불리던 학교의 위상이 많이 떨어진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이선용 동문 또한 신정아 사건이나 로스쿨 문제를 보면서 많이 안타까웠다고 한다. 그녀는 “이번 로스쿨 선정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형평성에도 전혀 맞지 않고, 동문, 학생 너나할것 없이 학내 구성원들 모두 정부에 항의해야 할 것 같다”며 분을 토하기도 했다.

현재 중국에 살고 있는 이선용 동문에게 학교 소식에 굉장히 밝다고 말하자, ‘학교 소식에 최고로 근접해 있는 아버지를 둔 덕분 아니겠냐’며 웃는다. 인터넷이 발달해 뉴스나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소식을 얻기도 하지만, 궁금하면 아버지께 질문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고.

학교에 대한 애정 어린 조언도 어김없이 털어놓았다. 이현정 동문은 “다른 학교는 날로 발전하는데 우리학교는 이전 모습에서 그대로 정체되어 있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선용 동문은 학교 기부금 상황이 저조한 것에도 일침을 가했다. “우수한 교수진, 나은 교육환경은 결국 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기부금 모금을 활발히 해서 학교가 발전하는데 보탬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자신이 성공하면 기부금을 내놓아 학교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밝히기도 했다.
몇 대를 걸쳐온 이종욱 박사의 가족은 올해 입학한 4대째 심수진 양으로 꽃봉오리를 피워가고 있다. 특히 이종욱 박사 가족은 불교종립대학인 ‘동국대학교’의 구성원들 중에서도 신심깊은 불자 집안이라는데 더 큰 의미가 있다.

재기 발랄한 심수진 양에서부터 나이 지긋한 이재창 이사까지 찬찬히 훑어보면 동국의 100여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찬란한 100년의 역사가 있기에 4대를 이은 동국가족은 꽃 피울 수 있었다.
앞으로 또 한 번 100년의 역사를 만들어 나갈 이재창 이사 가족이 동국에서 꽃을 활짝 피우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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