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교 102주년 기념 축시

꽃이란 꽃은 모두 돌아들 왔고
등이란 등은 모두 내다걸렸네.
이 날이 무슨 날인가
사람과 하늘의 큰 스승 부처님 오신 달에
동으로 큰 길 하나 열린 날,
동국대학교 열린 날.

고마워라, 낯빛으로 달력이 되어주는 꽃들
온몸으로 날짜를 짚어주는 연등.
그리고 천년의 해시계
남산 소나무.

꽃이여 등이여 소나무여,
그리고 친구여
하늘 끝 땅 끝까지 말 좀 전해주시게나.
생일날 아침 문득,
산골짜기 초등학교나 섬마을 분교를
닮고 싶은 이 학교의 희망 하나
남산코끼리의 꿈 하나.

스크린 높이 걸면 운동장은 극장이 되고
손가락 다친 농부가 뛰어오면 양호실은 병원이 되고
깊은 밤 책읽기 좋아하는 이장님이 선생님을 찾아오면
빈 교실은 마을도서관이 되고
큰 일이 생기면 광장이 되고
큰 손님이 오면 호텔이 되고……

아, 그 학교가 마을의 학교라면
우리 동국대학교는
세상의 학교라네.

올된 중학생이 만해스님의 목소리를 듣고 가고
가는 봄이 아쉬운 여인네가 ‘명진관’꽃그늘 아래 와서
시 한편을 쓰고 내려가는
세상의 학교.
머리가 무거운 회사원이 근심 하나를 내려놓고 가고
출근길 국회의원이 밝은 말씀 한 줄 듣고 가고
장충단공원 길을 돌아온 노인이
대금산조 한 가락을 들려주고 가는
세상의 학교.

국립도서관에도 없고
‘네이버’에도 나오지 않는 지혜를 얻은 여학생이
‘구글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길을 향해 걸어가는
세상의 학교.
꽃이 피거나 달이 뜨는 소리도 들리고
바람소리도 음악이 되는
세상의 학교.

경계도 없고 울타리도 없는 세상의 학교
부산도 멀지 않고 신의주도 멀지 않은 세상의 중심,
꽃 속으로도 길이 보이고
우주로도 길이 통하는
세상의 학교.
 
오늘이 개교기념일이라네.
세상의 학교,
동국대학교 열린 날.

윤제림 (시인·서울예술대학 교수·국문 83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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