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오와 줄리엣을 번안한 해오라기와 솔뫼

 “옛날 옛적 한 마을에 오랜 원한을 품은 두 가문이 있었는데… 비극적인 러브 스토리…”
이 소절만 들어도 머리에 ‘번쩍’하고 떠오른 작품이 있을 것이다. 바로 원수 집안 청춘 남녀의 사랑이 비극적 결말을 맞게 되는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하지만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을 것이다. ‘옛날 옛적?’, ‘한 마을?’ 이것은 우리 전통 이야기에나 나오는 멘트이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국판이라고 하면 쉽게 고개를 끄떡일 것이다.

다시 태어난 로미오와 줄리엣

 작품의 줄거리는 이렇다. 옛날 옛적 한 마을에 오랜 원한을 품은 두 가문이 있었는데 솔 가문과 해 가문이다. 해 가문의 해오라기와 솔 가문의 솔뫼는 솔 가문이 연 백중놀이에서 한 눈에 서로에게 반하게 된다. 하지만 솔뫼에게는 명문가 자재인 천록이라는 약혼자가 있었다. 결국 원한의 불씨에 휘말려 세 가문의 비극적인 파멸에 이르게 된다. ‘해오라기’와 ‘솔뫼’의 사랑도 애틋하지만 슬픈 외사랑을 시작으로 끝내 ‘해오라기’에게 죽임을 당하는 ‘천록’ 도령을 보고 있노라면 한없이 사랑을 주었지만 받을 수 없는 비극적인 운명에 마음이 아파 온다. 로미오는 해 가문의 해오라기로, 줄리엣은 솔 가문의 솔뫼로 연극의 흐름은 판소리와 택견이 이끌어간다.

원작 안에 한국적 묘미

 가야금 가락이 흐른다. 거문고 가락도 흐른다. 거문고와 가야금의 가락만으로 배경음악은 극에 맞게 흘러간다. 가끔 밋밋하다 싶으면 ‘솔뫼’ 유모의 북소리와 구성진 노랫 자락이 첨가되기도 한다.

 ‘이크, 에크, 이크’ 해 가문과 솔가문의 싸움에는 다소 생소한 구호와 함께 원작의 칼 싸움이 부채를 무기로 한 택견의 몸짓으로 대체된다. 좁은 소극장 곳곳을 누비는 택견의 몸짓은 끊어질 듯 하면서 다시 이어진다. 거문고 가락의 ‘두둥’ 소리와 함께 부채는 날카로운 호선을 그리며 한 등장인물의 죽음을 알린다. 순간 쥐죽은 듯 숨이 죽어드는 관객석. 점점 두 가문의 비극적 파멸이 다가올수록 배우들의 긴장감은 두 배가 된다.

 이 작품은 미국 옥스퍼드 마이애미 대학 연극학과에서 25년간 교수로 재직하면서 셰익스피어작품을 연구해온 하워드 블레닝 교수가 연출을 맡았다. 연희단거리패의 김미숙 씨가 공동 연출자로 ‘베를린 개똥이’에 이은 해외연출가 프로젝트 두 번째 작품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셰익스피어의 구조를 살리다

 김미숙씨는 “해오라기와 솔뫼는 셰익스피어를 한국적으로 각색한 작품이지만 셰익스피어의 대본의 원형을 그대로 사용했다”며 “가장 한국적이지만 유럽의 셰익스피어의 구조에 가장 충실한 공연이다”라고 말했다. 이 작품에서는재미를 위해 두 주인공의 러브스토리로 원작을 재구성하는 일반 연극과는 다른 차별화된 특징을 엿 볼 수 있다.

 실제로 ‘해오라기와 솔뫼’는 가장 중요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여러 버전 중 셰익스피어 사후의 대판을 기초로 시간과 장소를 옛 한반도로 각색하여 원형 ‘로미오와 줄리엣’의 잃어버린 구조를 되찾았다. 영어로 만들어진 어떤 버전보다 더 셰익스피어의 의도에 다가갔다고 평가받는다.


원작에서 찾은 패리스와 천록

 원작에서는 우리가 익숙했던 몬테규 집안과 캐플릿 집안 이외에 줄리엣의 원래 약혼자인 ‘패리스’가 등장한다. 하지만 일반 연극은 극중 재미를 위해 어떠한 연극에서도 패리스를 등장시키지 않는다. 대중적인 극을 위해 편집의 희생자였던 ‘패리스’를 ‘해오라기와 솔뫼’에서는 ‘천록’이라는 등장인물을 통해 볼 수 있다. 천록은 원수 집안인 두 가문 이외에 이들의 원한에 얽혀드는 또 다른 가문의 자재로 드러난다.
기존에 쏟아지는 셰익스피어 원작의 연극, 뮤지컬과는 다른 셰익스피어 원작의 정통 구조를 보고 싶다면 ‘해오라기와 솔뫼’를 한번 보는 것은 어떨까. 원작에 가장 가까운 연극이라고 해서 지루하다고 생각하면 금물이다. 왜냐하면 탄탄한 셰익스피어의 구조 겉에는 우리 민족만의 신명나는 소리와 몸짓이 있으니까 말이다.

3월 셰익스피어 원작
연극ㆍ뮤지컬

△ 뮤지컬 햄릿
4월 5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극장용
 공연정보 www.musicalhamlet.com

△ 줄리에게 박수를
5월 5일까지, 두산아트센터
공연정보    http://club.cyworld.com/doosanspace111

△ 나비스 햄릿
4월 6까지, 설치극장 정미소
공연정보 www.jungmiso.com

△ 테러리스트 햄릿
3월 23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
공연정보 www.ntok.go.kr

△ 레이디 멕베스
4월 13까지,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
공연정보 www.sa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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