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와 글쓰기가 그야말로 화두가 된 세상이다. 초등학교에서 시작하여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세대별로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 목록으로 나와 있으며 입시, 입사시험에서도 글쓰기를 부과하는 추세로 바뀌고 있다.

삼국시대 조조의 아들 조식이 ‘문장은 경국의 대업이요, 불후의 성사’라 외친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된 걸까. 글쓰기가 한 국가의 운명과 직결된다는 말에는 과장이 없지 않다해도 글쓰기가 개인의 앞날을 좌우하는 수단이 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글쓰기에 대한 강조는 한낱 구호일 뿐 대학생들의 작문태도에서 진정성을 찾기는 퍽이나 힘들다. 대학생들이 가장 빈번하게 쓰는 레포트를 예로 들어보자. 과제물을 받아 읽을 때마다 필자는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생각부터 앞선다.

동일한 과제를 부과했으니 내용이 엇비슷해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지 모르나 근본적인 이유는 주어진 과제에 별 공력을 들이지 않은데 있다.

참고서 몇 권을 정한 뒤 이곳저곳에서 단락을 끌어다 적당히 구색 맞춰 나열한 것들이 태반이다. 책을 참조하는 것은 그나마 성의가 있는 편이다. 인터넷 검색의 귀재들이라 할 수 있는 학생들은 모든 것을 컴퓨터 앞에서 해결하며 최소의 시간으로 최대 분량의 레포트를 만들어내는데 남다른 특기를 발휘한다.

하지만 인용처를 빠짐없이 적기하는 일은 드물고 위아래 단락 사이에도 소통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용어도 통일이 되지 않은 일이 비일비재하다. 자료를 꼼꼼히 읽지 않은 채 분량 채우는 데만 열중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하품 대신 눈이 번쩍 뜨이게 하는 학생은 없을까. 이런 푸념은 나에게만 해당되지 않을 것이다.

학부생들이므로 제 삼자의 지식과 정보를 수용하는 것으로 족해야 한다고 보는 이도 있으나 레포트일지라도 자신의 생각과 비판을 포함하는 글이 되어야 한다. 인용위주의 글쓰기에 익숙해버리면 스스로의 판단이나 생각을 드러내기가 점점 두려워진다. 레포트에서 학위논문처럼 탄탄한 논리를 바탕으로 하여 참신한 내용까지 두루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해도 최소한의 규범은 지킬 필요가 있다. 출처 모를 곳에서 잘려온 유령의 글로 가득 채워지고 정작 본인의 말은 전혀 찾을 수 없다면 제출자는 표지에서 자신의 이름을 삭제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자신만의 독특한 견해나 발상, 비판을 글에 담기 위해서는 기존 성과,이론을 맹목적으로 뒤쫓는 습성부터 버려야 한다. 사소한 것까지 의문을 품고 논리적으로 딴지걸기에 익숙한 사람으로 변해가자. 그럴 때 비판적 시각이 싹틀 수 있고 나름의 대안이 가능해진다. 주변의 냉소와 비판 때문에 자기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 힘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생각하기 나름이다. 내 글은 주체적 인간으로 나를 확인시키는 기표의 덩어리라는 자부심을 되뇌어보자. 기성의 사고와 주장에 의문을 품고 뒤집어 보고 그리하여 자신의 생각과 아이디어를 접목시키려 안간힘을 다하는 그런 글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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